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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살고 싶은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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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뉴욕 특파원

미국의 요즘 핫 이슈는 ‘이민’이다. 중앙 정가에선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이 이민법 개혁으로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남부 텍사스 국경 지역엔 중앙아메리카에서 몰래 국경선을 넘어 들어오다 붙잡힌 아동 5만여 명이 수용돼 있다. 국경 단속 강화라는 해묵은 소재 위에 아동 인권이라는 예민한 문제가 맞물리면서 이민 이슈는 한층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사회가 이민 봉쇄나 억제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정책과 의지는 확고하다. 미국 독립기념일(7월 4일) 주간을 맞아 미국 전역의 약 100여 곳에서 시민권 수여식이 열렸다. 지난 2일 그중 한 곳인 뉴욕공립도서관에서 개최된 행사에 가봤다. 이날 미국 시민권을 받은 이들은 47개국 출신의 150명. 참석자들은 “이제부터 여러분은 미국 시민”이라는 선언에 환호성을 질렀다. 오바마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여기까지 오는 데 힘들었을 거다. 이제 미국 정부가 여러분을 보호할 것이다”는 약속에 참석자들에겐 감격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이민자의 나라다. 이민자들이 세웠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이민자가 유입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 행사에서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미국의 DNA”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숫자로 입증된다. 지난 10년간 미국 시민이 된 외국인은 660만 명이 넘는다. 미국 경제는 이들로 인해 노동력 부족과 혁신에너지 고갈이라는 시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의 심장부인 실리콘밸리가 단적인 예다. 그곳을 주름잡고 있는 상당수는 인도·중국 등 아시아계 이민자다. 올해 벤처업계 최고의 대박을 터뜨린 왓츠업 공동창업자인 잰 쿰도 우크라이나 출신의 이민 1세다. 페이스북의 왓츠업 인수로 그가 거머쥔 돈은 85억5000만 달러(약 8조6000억원). 잰 쿰은 사실 미국 경제에 그 이상의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개발한 왓츠업이 아니었다면 미국은 요즘 커뮤니케이션의 대세가 된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경쟁에서 다른 나라에 밀렸을지 모른다.

 이민이 중요한 것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이민 문호를 활짝 여는 것은 해외 젊은 인재 유입의 토양이 된다. 다양성과 차별성은 창의성과 역동성의 토대가 된다. 이민자들은 고령화 사회의 취약점을 메워주기도 한다. 출산율 저하로 생산인구가 줄어드는 경제에서 이민자가 제공하는 노동력은 소중하기만 하다.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창조적 기업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출산율은 1.19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그렇다면 한국은 얼마나 이민 문호를 열어놓고 있는가. 이렇게 물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사건사고에 이민보따리를 싸는 이들이 적잖은 판에 무슨 외국인 유입 정책이냐는 면박이 쏟아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짚고 가야 한다. 외국인이 와서 살고 싶은 사회가 토종 한국 사람에게도 좋은 사회다. 이민을 불러들이는 정책이 절실하다.

이상렬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