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자유와 붉은 군대라는 두개의 망령이 지금 서구에 횡행하고있다』고 「레이몽·아롱」교수는 서구인의 불안을 이렇게 표현했다.
75년8월 「헬싱키」헌장이 서명되었을때 적어도 「유럽」인들만은 그것을 평화의 보장으로 받아들였었다. 4년이 지난 오늘 적군망령뿐만 아니라 80년대 3차대전의 「시나리오」가 속속 발표되어 서구의 평화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새벽동이 트기전 희미한 빛속에서 「재크」대위는 갑자기 한무리의 「탱크」들이 국경을 넘어 「풀다」의 숲통로를 향해 습격해오는 것을 보았다. 소련군에 의한 서구침공이 개시된 것이다.』 영국의 「존·하케트」경이 그린 「시나리오」『제3차세계대전-1985년8월』은 전쟁발발 최초의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러나 이「시나리오」는 「나토」군의 승리로 끝나는 낙관론을 펴고있다.

<깨진 헬싱키헌장에의 기대>
비관적 「시나리오」는 「프랑스」와 「벨기에」의 군사전문가들에 의해 나왔다. 불군참모본부의 「기·돌비」중령의 『제6열』은 80년대의 서시낭림 첨례의 주말에 붉은 군대가 수일만에 「라인」강을 넘어 「파리」를 점령해버리는 모습을 묘사했다.
이미 76년에 「하케트」경과 마찬가지로 「나토」의 지도자였던 「벨기에」의 「로베르·크로즈」장군이 방위없는 「유럽」에서 기습공격을 개시한 「바르샤바」군이 48시간만에 「라인」강을 점령한후 「나토」사령부에 살도하는 결정적 패배를 상상했다.
또 『제6열』의 저자 「돌비」중령은 「르네·카냐」대령, 군사학자 「파스칼·뭉텐」교수와 공저로 8월초순 『유러시마』를 출판했다. 「유럽」의 「히로시마」화를 상징한 이 『유러시마』는 소련의 기습공격에 서구의 방위기구가 속수무책임을 강조하고 너무 늦기전에 「유럽」방위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년들어 80년대 전쟁「시나리오」들이 쏟아져나온 현상은 군사전문가등 일부의 불안감을 반영하는 것일뿐 대다수의 일반시민들과는 상관 없는 것같다.

<군사전문가들의 불안반영>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30년동안 평화롭게 살아온 서구인들의 의식에서 「전쟁」이란 단어가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여서 태평「무드」다.
관심이 있다면 생활의 여유를 찾는 것이지 전쟁이란 아예 생각조차하기 싫다.
가정주부인 「소피」여인(34)은 『나도 흥미삼아 「제6열」이란 책을 읽어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픽션」이지 현실은 아니다』면서 『그 전쟁「시나리오」란 것은 군인들이 월급값을 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전쟁위험주장을 오히려 빈정대기까지 했다.
「존·하케트」경의 『제3차대전』을 읽어봤다는 「몰드렐」씨(43·회사원)는 『「바캉스」를 떠나기전에 읽었지만 완전히 잊어버렸다. 「이탈리아」해변에서 「바캉스」를 보내는중 그 전쟁「시나리오」를 한번도 상기해본 적이 없었다』면서 현재 생활을 압박하는 「오일·쇼크」로 인한 전쟁이 차라리 실감날듯 하다고 했다.
「유럽」인들이 전쟁을 생각하려 들지도 않는 이유 중에는 2차대전의 악몽을 회상하기조차 싫기 때문인 점도 있다.
공무원 「모레」씨(55)는 『「유럽」대륙은 과거 두차례의 전쟁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죽고 파괴되었다. 2차대전 종전후 전쟁의 악몽이 서구인들의 가슴에 망울져있다』고 했다.
「파리지앵」들은 1870년 보불전쟁, 1914년과 40년의 양차세계대전을 통해 점령이라는 암흑기를 체험했다. 또 1차월남전때 「디엔비엔푸」의 치욕과 「알제리」전쟁에서 「프랑스」군의 자부심을 불신하게 됐다. 비단 「프랑스」인들뿐만 아니라 서구인들은 역사적으로 크고 작은 전쟁의 연속속에 시달려왔다.

<관심은 일상생활 즐기는것>
『오늘날 「엘베」강의 동이든 서든간에 「유럽」인들은 서로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전쟁은 「유럽」인들의 것이 아니다. 오직 초강대국의 핵경쟁만이 「유럽」에서 전쟁을 일으킬수 있다.』
「파리」시민의 이 한마디는 초강대국의 무기경쟁이 화약고라고 단정하고 『전쟁보다는 「베를린」이 미군에 둘러싸이고 「프라하」와 「부다페스트」속에서 소련군을 보면서 사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말했다.
서구인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간에 「전쟁」이란 개념자체를 거부하며 비록 소련군의 기습공격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믿으려 하지 않으려는 생각이다.
그들은 주말에 부부가 「레스토랑」에 가거나 영화·음악회·「오페라」감상등을 자주 다니며 평화로운 일상생활을 만끽하는 것만이 관심사다. 시민들은 설사 전쟁이 나더라도 그것은 정부와 군대가 할일이라는 태도마저 보인다.
「소르본」대학생 「파트리크」군(21)은 『80년대전쟁론은 있을수 있는 상상이고 「스위스」같은 나라는 핵폭탄에 대비한 세계에서 가장 큰 방공호를 만들어 놓고 있지만 그것들이 우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 아닌가?』고 반문하고는 『그것은 정부와 군대가 할일이고 서구시민 어느 누구도 전쟁을 바라지도 믿지도 않는다』고 했다.
서구인들의 소박한 시민적 평화의지와는 달리 지도자들은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 전「유럽」을 통일하는 야망을 버리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히틀러」가, 「스탈린」이 대륙의 지배를 노렸다. 서구인은 「보레즈네프」의 소련도 야망을 지녔다고 본다.
서구에서 80년대에 제3차대전이 터진다는 가상은 「헬싱키」헌장이후 소련의 급속한 군사력강화에 기인한다.
소련의 재내병기증강이 「유럽」각국의 군부를 불안하게 했다.

<점점 커지는 불길한 그림자>
최근 「프랑스」군부에서 핵무기일변도의 군사정책이 재내무기의 황무지를 만들었다고 자아비판한 것이 좋은 예다.
『우리들의 기본권리는 우리집을 잿더미로 만들지 않는데 있다. 그러나 동서를 불문하고 핵기지가 도처에 존재한다. 35년전부터 소련의 붉은 군대가 「엘베」강 동부에, 미군이 서부에 계속 주둔하고 있다.』「파리」의 한 시민은 「르·몽드」지에 기고한 「독자의 편지」에서 이같이 지적하면서 『오늘의 역사·세계는 전쟁의 위험을 피하도록 일하는 지도자를 요구한다』고 했다.
서구인의 평화관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전쟁「시나리오」의 속출은 이것이 적중하든 않든간에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이것은 80년대의 서구에 무시못할 새로운 요소가 될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