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하우스’가 아닌 ‘홈’ … 달라진 아파트 개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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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호 18면

지난달 말 흥미 있게 읽은 주택시장 관련 보고서가 있다. 최근 만난 대형건설사 CEO도 이 보고서에 대해 “정리가 잘 돼 있어 유익했다”고 말했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의 ‘아파트 시장 트렌드 변화 및 시사점’이다. 강민석 부동산연구팀장과 김홍태 연구원이 쓴 이 보고서는 아파트 시장의 7가지 트렌드 변화를 요약했다.

①신축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 증가
2006년 이후 낡은 아파트와 새 아파트의 3.3㎡당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지방보다 서울·수도권이 심하다. 서울에서 준공 후 5년 미만과 10년 초과의 가격차가 2006년엔 10% 정도였는데 지난해엔 30%가량이었다. 사업 위축으로 재건축 개발이익 기대감이 떨어지면서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의 매력이 떨어진 것이다. 새 아파트는 발코니 확장 합법화, 친환경 시스템, 특화 평면 등에 힘 입어 인기가 높아졌다.

②중소형 우위
전용면적 85㎡(33평형) 이하의 중소형 아파트 공급 비중이 2010년 이후 증가해 2013년 80% 수준으로 올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거비 부담이 큰 중대형에 대한 수요가 줄었다. 3.3㎡당 분양가격이 중대형보다 중소형이 비싼 단지가 잇따르고 있다. 이전에는 전용 85㎡ 초과 중대형에는 부가가치세(건축비의 10%)가 붙고 중소형보다 상대적으로 고급스럽게 지어져 단위면적당 분양가가 비쌌다.

③면적·형태 다양화
과거 경제개발·도시화 과정에서는 주택이 대량 공급되면서 공급자 위주로 주택형이 획일적인 형태였다. 주택이 부족한 초과수요 상태여서 주택건설업체가 짓기 편한 주택형 위주로 설계됐다. 전용 59㎡형(24평형), 84㎡형(32~34평형), 114㎡형(44평형)이었다. 그러다 주택이 넉넉해지면서 수요자들이 기존 주택형에 만족하지 못했다. 74,87,90,108㎡형 등 기존 주택형에서 볼 수 없던 타입들이 등장했다.

일러스트 강일구

④주상복합 아파트 변신
2000년대 생활이 편리한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고가 주택시장을 선도했다.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대표적이다. 고층·대형 위주 주택형, 각종 편의시설로 고급 아파트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비싼 분양가 등으로 금융위기 이후 선호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최근 들어 기존 단점을 보완하고 일반 아파트의 장점을 받아들이면서 주상복합 아파트가 수요층을 넓히고 있다. 주택형을 줄이고 환기·퉁풍이 좋은 판상형 설계를 도입하고 있다.

⑤브랜드 선호
2000년대 초반 주택건설사들의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태어난 브랜드는 아파트 선택에서 중요성을 키우고 있다. 브랜드별 품질과 기능에 대한 이미지에 따라 가격차가 커졌다. 금융위기 이후 주택경기 침체, 할인분양 등의 영향으로 브랜드별 가격차가 줄어들기도 했으나 근래 주택시장이 회복 분위기를 보이면서 다시 벌어졌다. 올해 들어 서울지역 대형 주택건설사의 인기 브랜드 단지 가격과 전체 평균 가격 차이가 3.3㎡당 1월 1564만원에서 4월 1590만원으로 확대됐다.

⑥노후 아파트 정비
정비가 시급한 준공 후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가 지난해 말 기준 전국적으로 30만1200가구에 달한다. 서울이 절반에 가까운 14만1500가구다. 노후 단지는 앞으로 크게 늘어 2020년엔 지금의 4배 정도인 122만5000가구로 급증한다. 서울·수도권이 68만7000가구다. 노후 아파트 정비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재건축·리모델링 규제 완화가 요구된다.

⑦지역간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2004년 이후 주택시장의 지역간 세분화가 심화되기 시작했다. 2004년 이전 유사한 흐름을 보이던 서울·수도권과 지방의 주택경기가 다른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주택가격 디커플링이 같은 지역 안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지역별 3.3㎡당 가격차가 심하다. 분양시장에서 청약 경쟁률도 단지에 따라 차이가 크다. 인근 아파트인 데도 지하철역과의 거리, 아파트 구조 등 특성에 따라 가격 편차가 크다.

주택시장의 ‘일곱 빛깔’ 트렌드를 낳은 프리즘은 뭘까. 집값 상승세 둔화다. 2000년대 중후반을 지나고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집값 상승세가 이전보다 많이 꺾였다.

그러면서 아파트가 ‘돈’이 아닌 ‘집’으로 바뀌었다. 교환가치보다 사용가치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돈을 더 받고 팔 집이 아니라 내가 거주할 집이다. 그러니 살기 편한 새 아파트가 좋고 경제성과 실용성을 갖춘 중소형이 인기다. 자연히 품질에 신뢰가 가고 애프터서비스가 좋은 브랜드 아파트를 찾고 같은 동네에서도 지하철역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단지를 계약한다.

가격이 많이 오를 때 들불과 같은 상승세에 묻혀 보이지 않던 지역·단지별 차별화가 불길이 잡힌 뒤 나타나는 것이다. 아파트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때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지난달 펴낸 책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에서 “집은 투자재인 ‘하우스’에서 삶의 가치와 행복을 늘리는 ‘스위트 홈’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자산의 대부분을 깔고 앉아 있는 아파트를 ‘돌’ 보듯 할 수 없다. 내 아파트가 달라진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는지 따져보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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