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산 생수 모델을 위한 변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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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호 30면

요즘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중국의 한 생수회사의 CF에 출연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생수병에 쓰인 ‘장백산(長白山)’이란 표현이 문제가 된 모양이다. 가뜩이나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민족적인 감정이 예민해진 터라 그 파장이 커진 것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구체적인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중국의 치밀한 동북공정에 이용당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금전적인 욕심에 눈이 멀어 민족의 자존심을 저버렸다는 공세도 서슴지 않았다. 그 연예인들의 소속 회사는 그 같은 반응에 화들짝 놀란 나머지, 사실적인 근거조차 따져보지 않고 광고를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장백산이나 백두산은 원래 불함산(不咸山)이라고 일컫던 산을 달리 부르는 이름들에 불과하다. 중국 사람들은 산 정상에 눈이 오래도록 녹지 않아 하얗다고 하여 길 장(長)자와 흰 백(白)자를 써서 장백산이라 한 것이고, 우리는 산머리에 눈이 쌓여 하얗다고 하여 흰 백(白)자와 머리 두(頭)자를 써서 백두산이라 부른 것이다. 서로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을 뿐이다.

장백산이 비록 중국에서 만들어진 이름이기는 하지만, 고려와 조선시대 때의 국가기록에도 등장한다. 또 우리의 수많은 문인들, 심지어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도 장백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www.itkc.or.kr)의 ‘한국고전 종합DB’ 검색창에 ‘장백산’을 입력하면 우리나라 각종 문헌 571곳에 사용된 사례가 나온다. 물론 ‘백두산’도 805곳에서 사용한 예가 있다. 이처럼 과거 우리 선조들은 장백산이나 백두산이란 호칭에 별 차이를 두지 않고 사용했다. 장백산이라는 이름도 아무 거부감 없이 썼다는 것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중국에서 자기들이 만든 상품에 장백산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도 없고, 우리가 굳이 문제 삼기도 어렵다. 현재 중국에서 시판 중인 ‘장백산’이라는 담배에 대해 우리가 뭐라 하겠는가. 중국을 여행하면서 ‘장백산’ 생수를 마셨다고, 혹은 ‘장백산’ 담배를 사서 피웠다고 해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옹호하는 한심한 자라고 매도한다면, 유치할 뿐 아니라 어불성설이다. 상품 이름은 그저 상품 이름일 뿐이다.

우리 네티즌들의 감정을 이해하고는 싶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작하면서 백두산을 장백산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민족감정이 상한 것이리라. 그리고 그 불똥이 장백산 생수의 CF에 출연한 우리 연예인들에게까지 튄 것이리라.

하지만 이런 소동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는 감정적인 접근보다 냉정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고구려 역사 문제만 해도 그렇다. 중국의 역사 왜곡에 격분할 것이 아니라 반박할 수 있는 역사적인 근거를 차분하게 찾아보는 것이 옳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때부터 봄, 가을로 평양에 있는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주몽) 사당에서 제사를 드린 기록이 있다. 전 세계의 어느 멍청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조상에게 그것도 500여 년 동안 제사를 드리겠는가. 역사적 사실은 왜곡할 수 있어도 역사적 진실은 결코 없앨 수 없다.

우리는 동북공정이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 아래 진행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럴수록 지엽적인 문제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또 알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당당하게 지키는 길이다.

한·중·일 3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역사 왜곡과 영토 문제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깨트릴 수도 있는 예민한 뇌관이다. 한 두 개의 자구(字句)에 흥분하지 말고 동아시아 정세라는 큰 틀 속에서 대승적으로 살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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