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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정상회담 예상 밖 밋밋한 결과 한국 운신 폭, 남북관계 개선에 달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뜨거운 여름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지난 7월 첫 주 동북아시아에서는 보기 드문 외교 열전이 벌어졌다. 한국과 중국 정상이 서울에서 회담을 하고 있는 와중에 북한과 일본 정부의 국장급 실무자들은 베이징에서 관계 개선 협상을 진전시키며 맞불을 놓았다.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 3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대북 제재 조치 일부를 해제한다고 선언했다. 전통적인 한·미·일 3각 협력체제와 북한·중국 혈맹 간의 대립구조와는 전혀 다른 외교전 대형이 펼쳐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동북아의 지정학적 체스판에 요동이 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활발한 합종연횡이 모색됐지만 그 결과는 의외로 밋밋해 보였다. 경남대 김근식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처음부터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요소가 있었는데 결국 의미 있는 진전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각자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으로서는 중국이 북한 핵에 대한 확고한 불용의사를 표시해 주고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교묘히 이를 피해 갔다. 지난해 베이징 한·중 정상회담 때보다는 표현 수위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공동성명에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강조됐다. 한국외대 오승렬(중국학부 교수) 중국연구소장은 “북한 핵뿐 아니라 한국의 핵도 불용하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중국으로서도 한국을 미국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떼어 놓으려는 시도가 잘 먹혀들지 않았다. 일본을 압박하는 이른바 ‘한·중 역사동맹’ 구축에 실패했으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한국을 참여시키지 못했다. 다만 정상회담 이틀째인 4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일본의 자위권 확대와 역사수정주의에 대해 공동으로 우려를 표시한 대목은 민감했다. 공동성명에 포함시키기에는 껄끄러운 부분을 비공식적 자리인 특별오찬에서 언급함으로써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일본 압박 공조에 나선 모양새를 보여 줬다. 중국 입장을 고려하고 국내 여론을 의식한 부분도 없지 않아 보인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야 하는 한국의 고심이 잘 드러난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전반적으로 보면 과거보다 양국 지도자들끼리는 사이가 더 가까워졌는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레토릭(수사)만 요란했지 실속은 없었다는 것이다. 박영준 국방대 외교안보대학원 교수는 “아직까지는 중국의 핵심 이익과 한국의 핵심 이익 사이에 교집합이 넓어진 것은 아니다”며 “중·일 갈등 심화 속에 우리의 외교적 활동 반경을 넓히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북·일 관계 개선 시도도 시늉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베 총리가 중요시하는 납북 일본인 문제 해결에 약간의 진척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김정은 정권의 속성상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일본의 북한 접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일본도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인다. 결국 서로 상대방을 지렛대로 이용한 일본과 북한의 외교 고립 탈피 시도는 쉽지 않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북한으로서는 혈맹 관계인 중국과의 관계를 다시 끌어올리고 북·미 수교로 확고한 체제 안정을 보장받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하지만 일본과의 접근은 이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일본으로부터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이끌어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지난주 동북아에서의 외교 열전은 각자의 한계가 뚜렷한 현실의 벽을 뛰어넘기가 힘들다는 것을 재확인한 셈이다. 동상이몽하고 있는 각자가 스스로 도생하는 길에서 나온 일시적 합종연횡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판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모멘텀은 없었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 관계 개선은 유용한 국면 돌파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제안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이 외교적으로 수세에 놓이고 중국 등에 부탁해야 할 일이 많아진 것은 남북 관계 악화에 일정 부분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관리만 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동북아 외교무대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남북 관계 개선은 우리의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카드”라며 “결국 우리가 물꼬를 트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경환·박신홍 기자 helmu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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