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의폭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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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늘의 우리는 나날이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종래의 지식이나 관습은 벌써 내일이면 별로 쓸모 없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늘을 사는 지혜는 그런 변화들을 어떻게 예측하며 또 적응하느냐의 「모빌리티」(기동성)에 있는것 같다.
지난 새벽 인천시를 공포로 몰아넣은 화공약품창고의 폭발만해도 그렇다. 미처 원인도 모르는 불이 일어나 시민들은 잠시나마 무슨 포격이라도 당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포우속에서도 불길이 치솟고 폭음이 잇달고…. 얼마나 전율했을까.
뒤늦게야 짐작되는 화인은 「외부온도의 상승에 의한 자연발화」. 필경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한 생소한 화재다.
우리주변엔 이런 「생소한경험」들이 한둘이 아니다. 환경오염에 의한 갖가지 질병들, 미묘한 누전사고들, 개발지에서의 홍수, 대형교통사고들, 「가스·탱크」의 폭발. 인공건축자재의 화재현장에서 발생하는 「가스」질식, 화약폭발…. 심지어는 「아파트」 건설현장의 웅덩이에 빠져 목숨을 잃는 사고까지도 빈번하다.
이들은 모두 예외없이 산업개발에 의한 신종의 사고들이다. 이제 또 언제 어디서 뜻밖의 사고가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가 요즘 경험하는 변화들은 선진제국의 경우 벌써 몇십년, 몇세대를 두고 겪은 일들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들이 우리주위에선 몇년으로 압축돼 어지럽게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그 부작용도 미처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하나의 공포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사고들은 한마디로 <합리성>과 균형을 잃은 발전과 성장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발전과 성장의 목적은 당연히 인간의 존중과 복지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없는 발전은 인간부재의 「로버트」사회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신의 형성』이란 명저를 남긴 미국의 철학자 「J·H·로빈슨」은 일찌기 오늘의 문명을 두고 이렇게 한탄한 일이 있었다. 지난3백년동안 과학과 기술은 급속한 진보를 이룩했다. 그러나 도덕성은 미처 그뒤를 따르지도 못하고 있다. 인간의 「모럴」과 물질적인 힘의 「언밸런스」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로 바뀌고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A·J·토인비」는 「로빈슨」의 비판보다도 더욱 통렬하다. 우리시대의 도덕성은 오히려 후퇴를 하고있는 인상이라고.
오늘의 우리사회를 보며 새삼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도덕성을 잃어버린 개발과 성장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번 인천의 화공약품화재에서 일어난 폭음은 우리의 귀를 찢는 경종의 소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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