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대북 제재 일부 해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아베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울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북핵 문제를 논의하기 직전인 3일 오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북한의 김정은에게 ‘제재 해제’라는 선물을 안겼다. 북한에 대해 독자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제재의 일부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1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북·일 국장급 협의에서 북한 측이 제시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조사 등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안에 실효성이 있다고 일본 정부가 판단한 결과다.

 북한은 “특별조사위원회는 북한 내 최고지도기관인 국방위원회로부터 모든 기관을 조사할 특별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서태하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을 위원장으로 한 특별조사위는 국가안전보위부·인민보안부·인민무력부 등의 관계자 30명 정도로 구성된다”고 일본에 통보했다. 아베 총리는 “국방위원회와 국가안전보위부 등 국가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기관들이 전면에 나서는 등 전에 없는 태세가 갖춰졌다고 판단했다”며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일본이 취해온 일부 조치를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북·일 양측은 납치 피해자 재조사와 일부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합의를 5월 29일 동시에 발표했었다. 이번에 해제될 일본의 대북 독자 제재는 ▶북한 국적자의 입국금지 및 북한 입국 자숙 등 인적 왕래 제한 ▶북한에 현금 10만 엔 이상 반출할 경우 신고 의무와 300엔 이상 송금 시 보고 의무 ▶인도주의적 목적의 북한 선박 입항금지다. 북한 측이 요구한 만경봉호 입항 금지 조치 해제는 보류됐다. 일본 정부가 4일 각의에서 제재 해제 내용을 공식 결정하면 북한의 납치 문제 재조사도 동시에 시작된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올해 늦여름이나 가을 초께 북한으로부터 (조사 결과에 대한) 첫 통보가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북한과)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납치 문제에 올인하는 아베, 일본을 지렛대로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려는 북한 김정은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으로 밀착하고, 중국과 한국이 접근하는 동북아 정세의 중층적 구조 속에서 일본과 북한 사이에는 납치자 문제를 매개로 한 ‘신 밀월관계’가 구축되는 모양새다. 문제는 ‘신 밀월관계’가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조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향후 북한이 납치 재조사의 진전을 이유로 만경봉호 입항금지 해제나 수출입 금지 해제를 요구하고, 일본 정부가 이에 호응할 가능성도 있다. 스가 관방장관은 부인했지만 아베의 전격 방북 가능성도 계속 거론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날 “일본 정부의 조치는 국제적 공조의 틀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