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진 만발 시대의 '아주 특별한 사진 수업'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 사진 인구 1000만 명 시대다.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즐기는 아마추어 사진가 수가 300만 명에 다다른 오늘, 사진 찍기는 이 땅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라 할 수 있다. 스마트 폰으로 찍어 올리는 이미지의 수는 저 하늘의 별만큼 많다. 다르게 표현하면 사진을 찍는 일이야말로 현대인의 한 속성이다. 사진 만발이다.

날로 좋아지는 스마트 폰의 화질,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전문가 급 사진기의 발달은 ‘사진의 대중화’가 아니라 ‘사진의 전국민화’를 가져왔다. 전직 대통령 한 분이 은퇴한 뒤 사진작가가 되어 활동해보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다. 사진 뒤에 붙은 작가란 말이 매력적이긴 하다. 한 순간에 작가로 뛰어오를 수 창작혼의 비밀이 사진에는 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세월호 사건(4.16 사건이라 해도 좋다)의 한 관계자가 난데없이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등장해 사람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아해’란 이름으로 거액의 작품가격을 형성한 이 인사는 아마추어인가 프로인가, 많은 이들이 혼돈스러워했다. 사진작가라는 지위가 덤으로 따라올 때만 사진작업에 잠시 몸담을 수 있는 일부 유사(類似) 프로들이 넘쳐나는 한국 사진계의 미래는 때로 암담할 지경이다. 사진평론가 박평종씨가 이런 최근 상황을 파헤친 책 제목을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라 붙인 건 시의적절해 보인다.

대략난감일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상책이다. 일간지 사진기자로 뼈가 굵은 주기중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사진팀 부국장은 사진에 입문하려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첫 걸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창조적 사진 전략을 차근차근 조목조목 정리했다. 직업인으로서 30년 가까이를 날마다 카메라를 무기이자 친구 삼아 또박또박 걸어온 땀 냄새 나는 사진과 글이 책갈피 마다 소복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일부터 시작해 마음담기를 거쳐 사진만이 지닌 특별한 속성을 받아들이는 일까지 친구에게 얘기하듯 들려주는 그의 자상한 지도는 각별하다. 무조건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서기 전에 기본을 제대로 닦기 위한 기본 수업이 충실하다. 주제마다 충실하게 붙인 비교 사진을 보면서 핵심 부분을 책에서 시각화하는 훈련은 사진학과의 전문 교실 수업에 맞먹는다.

국내 출판계에 나와 있는 사진 책은 많다. 사진이란 워낙 여러 방면의 배움이 필요한 현대예술이기 때문에 지름길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에게 적절한 지도와 조언을 던져줄 수 있는 교재를 고르는 것이야말로 좋은 출발일 텐데 이 책의 저자는 독자들을 이끄는 책임감이 믿음직하다. 현장을 뛰며 본인이 나날이 겪은 난제와 고민을 풀어보려는 마음고생이 글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많은 이미지 중에서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일종의 전략적 게임이라 볼 수도 있다. 시간과 공간의 배합은 그 경우의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 책은 그 결단 앞에서 카메라를 든 독자들이 효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다양한 표현 수단을 일러준다. 지은이가 고심해 고른 ‘결정적 순간’의 사진을 자주 들여다보고 그것을 해석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미국 사진작가이자 사진교육자로 유명한 필립 퍼키스(Philip Perkis)는 한국에 와서 전시회를 열어 알려지기도 했지만 『사진강의 노트』의 저자로 더 사랑받는다. 그의 작은 책 안에는 사진의 본질을 일러주는 어록에 가까운 명문이 가득하다. 이를테면 “사진은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직접 부딪치기 싫어하는 것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같은 구절이다. 대형 사진이 미술시장에서 유행처럼 퍼지는 것을 경계한 다음과 같은 비유는 촌철살인이다. “머릿속에 든 생각이 점점 빈약해질수록 사진의 크기는 점점 커져만 간다.” 그는 사진 찍는 연습에 매우 엄격한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했는데 주기중의 이 신간은 필립 퍼키스 선생의 그러한 노선을 이어받고 있어 한층 믿음직하다.

사진은 중독성이 강하다. 열심히 배우고 익혀 웬만큼 훈련된 눈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나날이 자신의 이미지 선별력을 되풀이해 점검해보아야 한다. 사진공화국이 된 이 시대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로 사진을 찍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이 책은 ‘천천히 다시 바라보기’의 연습노트로도 유용하다. 이미지범람의 혼탁하고 진부한 강물에서 제 눈을 지켜야 한다는 자각을 일으키는 데에도 쓸모가 많다.

다시금 필립 퍼키스 선생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료해진다. “기술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보고 느끼는 사진 속에서 사진의 내용이 되는 질감과 명도를 제대로 살릴 수 있도록 사진가의 섬세함을 기르는 일이다.” 사진마다에 자신의 개성을 불어넣도록 독려하는 저자의 진심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독자마다의 실천적 독서에 달려있다. 정재숙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 저자 주기중|소울메이트 |2014.07.08 | 18,000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