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편편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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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바로크」풍의「호텔」「그랑·브루타뉴」앞 넓은 광장엔 수백개의 의자와 쇠탁자가 놓여있다. 저녁에 해질 무렵이면 이 노천「카페」는 지나가던 행인들의 휴식처로 바뀐다.
「아테네」의 대낮은 작열하는 태양으로 숨막힐둣 이글거린다. 이 때문에「아테네」시민들은 하루종일 햇볕을 피해있다가 저녁이면 어슬렁어슬렁 노천「카페」로 모여든다. 마치 자기집의 「리빙·룸」에나 앉아있는듯, 어린이를 동반한 한 가족이 몇시간이건 해진거리의 서늘함을 즐기며 노닥거린다.
한쪽 귀퉁이를 바라보니 젊은 남녀 둘이서「스프라이트」「사이다」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여자가 생긋 웃어왔다. 대학생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름은「포피·보이스」, 나이는 18세, 「스타마포슬루」 대학 2학년이라 했다.
-요즘 「무드」는?
-그저그렇다. 경제사정이 침체해 있다. 제일 큰 문제는 교육이다. 교사와 시설·교재가 모두 부족하다. 대학도 내가 벌어서 다니고 있다. 신문사 조사부에서「클리핑」을 해주고 있다. 앞으로 EEC에 가입하면 좀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펄쩍 뛴다.
-우리하곤 아무 상관이 없다. 「그리스」는「그리스」여야하지 어디 가입하는건 탐탁치 않다. 「카라만리스」도 「파판드레우」도 별 신통한 지도자는 못된다.「포피」양의 말은 서「유럽」사람의 냄새보다는 마치 어느 제3세계 민족주의자와도 같은 냄새를 풍겼다. 오랜기간「오토만·터키」의 지배를 받았던 전력때문일까. 사실상 「그리스」인들의 풍모나 인상·음악·생활태도는 서「유럽」적이라기 보다는 어딘가「아랍」적이고「라틴·아메리카」적인데가 다분히 있어 보였다. 은백색의 피부, 새까만 머리, 크고 동글고 쌍꺼풀진 두눈, 그리고 「라틴·뮤직」을 닮은 그들의 노랫가락…. 게다가 오후엔 꼭 몇시간씩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시에스터」의 버릇까지 갖춰 있었다.
-연애는 마음껏 하겠지.
-그렇지만도 않다. 16세 이하의 청소년이 연애를 하면 법에 저촉이 된다는사실을 아는가? 「데이트」를 할때도 일일이 아버지 허락을 안받으면 두들겨 맞기까지 한다. 이때 옆자리에 앉았던「아랍」인 두사람이 끼어들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라며「포피」양과 핏대를 올려가며 싸움을 벌였다. 가까스로 언쟁이 수습되는 둣해서 다시 물었다. 「터키」에 대한 감정과 여성해방에 관해 -.
-「터키」와의 불화는 국민과 국민, 젊은이와 젊은이 사이의 불화가 돼서는 안된다. 오늘의 일부 여성해방군들은 여성이 남성처럼 돼야하는 것인양 착각하고 있어 못마땅하다. 결론보다는 우선 한 인간으로서의 자립과 완성을 먼저 생각하고 싶다. 시집갈 때는 모든 가구와 집까지 다가지고 가야하는「그리스」의 여성들, 헤어져도 가구는 남편에게 주고 집만 가지고 간다는「그러스」여성들은 그러나 아직운 무척 부담많은 여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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