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명동성당|노기남<5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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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가 서울의 번화한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주교 좌를 떠나 조용한 안양 성「라자로」원으로 물러나 앉은 것은 1967년 3월 27일 오후였다.
성「라자로」원은, 세상 사람들이 찾아오기조차 꺼리는 나환자촌이다. 나는 나의 은퇴장소로 여기를 택했다.
이곳은 6·25후 안주교가 서울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창설, 그 후 서울대교구에서 그 운영이 위임되어져 결국은 내가 이를 관리하게 된 곳이고. 또 나의 옛친구 서(스위니)신부가 거처하던 곳이기도 하여 나와는 여러 가지로 인연이 있는 곳이다.
이곳 성「라자로」원은 불쌍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세상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문둥이 마을이지만, 그러나 거기에도 사랑이 있고 인정이 있는 여느 마을과 똑같은 곳이다.
내가 이곳에 온 뒤 며칠동안은 찾아오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신문사 기자들이 나의 은퇴 발표를 듣고 찾아온 것이다. 그야말로 사회에서 버림받은 듯 싶었던 이 마을에 무슨 경사라도 난 것 같았다. 하찮은 존재의 은퇴에 대해 언론기관에서 귀중한 지면을 할애 해 주면서 걱정해 준 점에 대해 감사하면서 한편으로는 송구스러웠다.
그리고 그 때부터 오늘까지 주일이나 공휴일이면 서울과 시골에서 나의 옛 친구들. 내가 아끼던 신부들, 수녀들, 학생들 및 신자들이 나를 찾아와 위로해 주고 있다. 때로는 이곳을 찾아온 젊은 학생들, 청소년들과 함께 등산을 하기도 한다.
이 마을의 환자들은 거의가 신자들이다. 그들을 위한 성당이 있어서 나는 매주일, 또는 축일이면 이 성당에 가서 「미사」를 지내주고 강론도 해준다. 고해성사·병사성사, 그 밖의 여러 가지 성사도 그때그때 주고 있다.
또 나는 내가 거처하는 주택의 방 하나를 성당으로 꾸며 성체를 모시고 보통 날은 거기에서「미사」를 지낸다. 언제나 성체께 조배할 수 있고 성체 앞에서 묵상과 기도를 드릴 수 있다. 그리고 거의 매일 오후에는 뒷산에 올라가 자연과 벗하며 지내기도 한다.
나는 한국에서 은퇴한 주교로서는 세 번 째다. 1963년에 대전교구 원주교가 은퇴했고 1966년에는 춘천교구의 구주교가 은퇴했다.
그러나 주교나 신부가 은퇴한다는 것이 성직을 떠나 속세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행정직만을 맡지 않는, 말하자면 무임소 신부나 주교일 뿐 성직생활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서울대교구 대주교의 모든 행정직의 의무와 책임을 벗어놓고 무임소 대주교로서 성직생활을 이곳에서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25년 동안 교구장으로 있으면서 항상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가 짐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고 자유스런 심경으로 이런 평화롭고 정신적 여유 있는 생활을 누리게 된 것이 모두 천주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나는 진실로 믿고 감사하며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주교성성 25년이 되는 1967년에 은퇴를 했다. 결혼하고 25년이 되면 은혼이라 하는 것과 같이 성직세계에서는 25년 기념을 은경축이라 하는데 그 은경축 선물로서 천주님은 나에게 은퇴를 허락하신 것으로 생각되어 감사하는 마음 그지없다.
그로부터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12년의 세월은「강산이 한번 바뀐다」는 10년보다도 더 긴 세월이다.
그 긴 세월은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최근 10년 간의 변화는 과거의 50년이나 1백년이 가졌던 변화보다도 그 질이나 양에 있어 더 큰 데가 많다.
이러한 변화추세를 따라 한국 천주교도 그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신자수가 급증했고 여러 성당이 새로이 축성됐고, 성직자도 많이 배출되었다. 이제 한국 천주교는 이러한 굳건한 기반 위에서 그 발전을 가속화 할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한국천주교의 발전을 주도해 온 것이 다름 아닌 명동성당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1898년 축성이 되어 오늘까지 80여년 동안 한국천주교의 총 본산으로서 한국천주교를 상징해왔던 명동성당은 그래서 한국천주교의 교회사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많은 사연과 숱한 일화를 함께 지닌 명동성당은 우리민족 모두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명동성당이 날로 발전하고 그리하여 한국천주교가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동안 2개월 여에 걸쳐 이 글을 써 오는 동안 성원해 주신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고 누를 끼친 여러분께는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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