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중 사이 '선택' 임박 … 국익 우선 전략 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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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시진핑 주석(左), 오바마 대통령(右)

오는 3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은 동북아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취임 후 첫 단독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한 시 주석과 한국의 ‘들뜬’ 태도가 불편하다.

 시 주석의 방한 이후 미·중이 한국에 선택을 강요하는 ‘진실의 순간’이 점점 다가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이 원하는 미사일방어(MD) 체계 가입, 한·미 간 고고도 방어체계인 사드(THAAD) 도입 논의, 사드와 연동해 운용하는 엑스밴드 레이더 설치 등은 중국의 중요 지역을 겨냥하고 있어 양강 구도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압력 수위가 올라갈 전망이다.

 지금이야말로 국가 이익을 명확히 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외교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지정학적으로 강력한 나라들 사이에 있는 한국은 이 국가들이 안정적인 힘의 균형을 이룰 때 국익을 추구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며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심화시켜 최대한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특히 “선택을 강요받는 ‘진실의 순간’이 오더라도 한국엔 ‘논제로섬 외교’가 필요하다”고 큰 방향을 제시했다.

 그동안 한국은 미·중 가운데 한쪽과 가까워지면 다른 한쪽과의 관계는 그만큼 멀어지는 ‘제로섬 게임(Zero Sum Game)’식 외교를 해왔는데, 한국의 전략가치가 높아진 이상 이런 접근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과의 관계 발전에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중국의 태도를 지렛대로 삼아 상징적 수사에 만족하지 않고 냉정하게 ‘대차대조표’를 따져 계산서를 들이밀어야 할 때라는 의견도 나왔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아산정책연구원 고문은 “중국에 대한 낭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며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 중국은 필리핀과 베트남·일본 등 다른 역내 국가들과 갈등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을 포위망의 출구로 삼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천 고문은 “한·중 관계가 좋다는 것은 서로 불편하고 거북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자본’을 확보했다는 뜻”이라며 “한·중 관계의 장기적 발전에 걸림돌이 될 만한 얼굴 붉힐 문제들을 바로 지금 꺼내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 촉구할 수 있는 사항으로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행동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전략적 대화채널 가동 등 실질적 통일 지지 ▶조속한 한·중 해상경계선 확정 등을 꼽았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국과 중국의 밀착을 우려하는 근본적 이유가 삐걱거리는 한·일 관계 때문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짜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한·중 관계 개선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지만, 미국으로선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인 가운데 중국 쪽으로 치우치면 한·미·일 안보공조에 균열이 생긴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봉길 외교안보연구소장은 “중국은 한국과의 좋은 관계를 미·일에 대한 견제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이 여기에 발맞출 필요는 없다”며 “이럴 때일수록 미·중, 중·일 사이에 중재 역할을 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미·중 사이의 ‘공통분모’를 찾는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역할론’도 제시됐다. 외교부 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기후변화, 해상수송로 안전 확보 등 글로벌한 연성(軟性) 안보 이슈는 미·중 모두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다”며 “한·미·중이 머리를 맞대는 과정에서 각기 원하는 통일한국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논할 수도 있어 한국이 전략적 가치를 높이면서 실속을 챙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지혜·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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