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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7월의 주제 - '당신이 알고 있던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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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7월 주제는 ‘당신이 알고 있던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 입니다. 부와 명예는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요. 그동안 생각했던 행복의 기준을 바꿔보라고 제안하는 신간 세 권을 골랐습니다.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 이 책들과 함께 당신만의 행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남자의 빵집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236쪽, 1만4000원

반항적 10대, 꿈 없는 20대, 일에 치어사는 30대. 저자인 와타나베는 우리네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길을 걸어 왔다. 책의 제목에서 연상되는 ‘새빨간’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 건 직장에서 겪은 ‘협잡꾼’들이었다. 나이 서른에 늦깎이로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농산물 도매회사는 속임수가 판치는 곳이었다. 원산지를 속이는 일은 애교였고 뒷돈도 예사로 오갔다. ‘먹는 일로 장난치는 사람들’을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회사를 떠난다. 그러던 어느 날,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빵을 만들어 보렴”하는 말에 덜컥 제빵 수업을 받고 빵집을 차린다.

 그렇게 시작한 제빵일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확립하고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관문이 됐다. 와타나베는 놀라운 뚝심과 열정으로 제대로 된 빵을 만들어 파는 여정을 시작한다. 인공적으로 배양한 이스트 대신 관리가 어려운 천연 효모를 쓰고, 천연 누룩을 찾기 위해 직접 온갖 곰팡이를 먹어본다. 천연 누룩을 써도 발효가 잘 되지 않자 자연재배 쌀을 찾아나서고, 이마저도 만족 못해 좋은 물을 찾아 시골마을로 이사까지 간다.

일본 오카야마현 북쪽 마을 가쓰야마에서 빵집 ‘다루마리’를 운영하는 와타나베 가족. 오른쪽부터 아들 히카루, 와타나베, 딸 모모코, 부인 마리. [사진 더숲]

 와타나베는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를 만난다. 모든 물질을 부패시켜 흙으로 되돌리는 균과 달리 자본주의 속 돈은 이자가 이자를 낳으며 암세포처럼 끝없이 증식하고 결코 스러지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결론내린다. “부패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는 주범이다.”

 그는 마르크스를 통해 자본주의 모순을 간파했지만, 해법은 달랐다. 마르크스는 노동 계급이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공산주의 혁명으로 귀결될 것으로 봤다. 와타나베가 꿈꾼 건, 자신과 이상이 비슷한 이들이 함께 만드는 소상인 공동체다. 유기농으로 기른 곡물을 들여와 공업의 힘을 빌리지 않은 천연 효모와 누룩으로 빚어낸 빵을 파는 일. 이윤을 독차지하지 않고 빵집 스태프들과 나누는 일. 마르크스의 거시적 해법은 틀린 것으로 판명났지만, 그의 자그마한 꿈은 이제 막 펼쳐나가는 중이다.

 책엔 ‘행복’이란 단어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말에서 풍겨나는 행복감이 지면 밖까지 전해져 온다. “자연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기분 좋은 안도감”, “균에서 자연의 신비와 생명의 본질을 엿보는 즐거움”, “매일 반복되지만 할수록 새로운 길을 보는, 자연을 상대하는 노동이 주는 기쁨”. 이런 표현을 읽을 땐 빵굽기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직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참고로 한 가지 지적할 건 우리 막걸리에 대한 내용(127쪽)이다. 누룩균이 아니라 ‘거미줄곰팡이’로 양조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재 국내 막걸리는 대부분 누룩으로 만든다. 편집자도 이 부분이 걸려서인지 각주에 최근엔 국내 막걸리 제조사가 일본 누룩을 들여와 쓴다고 적어 놨다.

편집자의 설명은 정확한 편이지만,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처럼 여전히 전통 누룩으로 빚는 곳도 있다.

이정봉 기자

좋은 사람과 밥 한 끼, 그밖에 무얼 바라나

행복의 기원
서은국 지음
21세기북스, 208쪽
1만5000원

오늘도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당신에게 이 책을 들이밀어 본다. 행복을 부르는 주문이라도 적혀 있냐고? 그럴 리가. 대신 마음은 한결 편해질 지 모른다.

 ‘행복해지려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행복하려면 가진 것에 만족해라’ 등 행복을 인생의 지상과제로 삼는 목소리가 판치는 세상, 저자는 과감하게 펀치를 날린다. 20여 년간 행복을 연구해 ‘세계 100인의 행복 학자’에도 선정된 바 있는 저자의 글이니 어느 정도 신뢰해도 좋을 듯하다. 강펀치는 두 개다. 하나,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인간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도구일 뿐이다. 둘,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큰 변인은 유전, 즉 DNA다.

 우선 첫 번째.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행복의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측면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의 쾌락(행복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은 음식을 먹을 때, 데이트를 할 때, 차가운 손을 녹일 때 ‘아 행복해’라는 느낌을 경험해야만 하는 존재다. 그래야 또 사냥을 나가고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 즉, 행복을 느끼기 위해 밥을 먹고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그런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행복을 ‘기를 쓰고 노력해 쟁취해야 하는 그 무엇’이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두 번째 펀치는 더 강력하다. 행복하냐 그렇지 않느냐는 유전자에 새겨진 성격에 상당 부분(약 50%) 기인한다. 여기서 성격이란 구체적으로 외향성(사회성)이다. 이미 많은 심리학자들이 돈도, 명예도, 외모도 인간의 행복감과는 큰 관계가 없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여러 실험에서 나타난 행복도가 높은 이들의 공통점은 사람을 좋아하고, 타인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행복하다고 떠드는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특별히 기죽을 필요는 없다. 그저 ‘행복해지기 쉬운 유전자를 타고났군’ 여기면 그만이다.

 행복은 생존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계속 사냥을 나가기 위해서는 한번 느낀 쾌감을 금세 잊어야 한다. 따라서 지속적인 행복을 위해서는 일확천금, 승진 등 ‘한 방’보다 작은 기쁨, 소소한 즐거움의 반복이 유리하다. 결국 인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밥을 먹을 때’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그러니 행복해지겠다며 스스로를 들들 볶지 말 일이다. 좋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밥을 먹는 시간을 늘려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영희 기자

대중철학자 강신주, 불교 화두 48개 껴안기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강신주 지음
동녘, 480쪽, 1만9500원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다. 철학자 강신주가 이번에는 만만찮은 시도를 했다. 선가(仙家)의 화두 모음집인 『무문관(無門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무문관』은 1228년 중국의 무문 스님이 48개의 화두를 추려서 해설을 단 책이다. 절집의 수행자들은 요즘도 이 책을 펼친다. 그 물음 앞에 서면 내가 맞닥뜨린 막다른 골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서 수행자들은 문 없는 문의 문고리를 찾는다.

 저자는 줄기차게 강조한다. ‘어떻게 하면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나를 찾기’다.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는 ‘나’는 ‘남과 다른 나’가 아니다. 남을 모방하지 않고, 독창적인 나만의 행동을 한다고 해서 찾아지는 ‘나’가 아니다. 그런 나는 평면적이고, 상대적이고, 이분법적인 나다. 『무문관』에서 말하는 나는 ‘내가 있다’는 착각이 무너질 때 비로소 드러나는 나다.

 붓다는 “너의 자성(自性)을 찾으라”고 했고, 예수는 “네 안의 천국을 찾으라”고 했다. 저자는 자신이 가진 철학적 창과 방패로 문을 두드리고, 막고, 찌르면서 헤쳐간다. 그렇게 48개의 문을 통과한다. 그는 서문에서 “만신창이로 너덜너덜해졌지만 어쨌든 48개의 관문을 통과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1, 2년의 세월이 후딱 지나간 다음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48개의 관문을 통과하며 남긴 흔적들은 한 마디로 ‘몸부림’이다. 철학자의 치열한 몸부림. 거기에는 실존적 존재인 인간이 토해내는 한계와 탄식과 막막함이 흐른다. 동시에 문 없는 문을 뚫고자 하는 강렬한 바람도 배어난다. 그 과정에서 쏟아낸 저자의 모색과 고뇌와 사유가 독자에게는 공감의 위안을 안겨주지 싶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문 밖에 서 있다. 48개의 관문을 지나왔다지만 그의 철학적 풀이에는 ‘문 안’과 ‘문 밖’이 둘로 갈라져 있다. 그 사이에 문지방이 있다. 그 문지방의 정체가 뭘까. 바로 ‘철학자 강신주’다.

 그래서 이 책은 ‘철학자 강신주의 무문관 도전기’다. 저자는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道)다”고 했던 조주 스님을 언급한다. ‘너무나도 비범해 유지하기 힘든 평상심’이란 제목도 달았다. 우리는 화를 내지 않을 때, 고요할 때만 평상심이라 여긴다. 화가 공(空)하다는 정체를 알면 달라진다. 화나는 마음도 평상심이 된다. 그때 절벽에서 나의 손이 떨어진다. 이게 저자가 넘어야 할 문지방이 아닐까.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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