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최용수·이동국 … 그 다음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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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압박과 역습’이 대세다. 빠른 역습을 득점으로 마무리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오카다 다케시(58) 전 일본 대표팀 감독(현 항저우 그린타운 감독)은 “한국과 일본은 찬스를 확실히 골로 연결할 공격수가 없어 이번 대회에서 고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좋은 미드필더를 많이 배출해 왔다. 반면 뛰어난 공격수가 없어 차범근(61)-최순호(52)-황선홍(46)-최용수(41)-이동국(35·전북) 등으로 이어진 한국의 황금 공격수 계보를 늘 부러워했다. 하지만 다 옛말이다. 한국도 국제 무대에서 통할 만한 골잡이를 배출하지 못한 지 한참 됐다. 알제리전 참패 후 불거진 박주영(29·아스널) 논란도 스트라이커 부재라는 한국 축구 현실과 맞닿아 있다.

 소속 팀에서 거의 경기를 뛰지 못한 박주영을 월드컵에서 중용한 홍명보 감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냉정히 말해 박주영의 대체 자원도 마땅치 않았다. 국가대표 공격수 출신 안정환(38) 본지 해설위원도 “전임 대표팀 감독들도 고충을 털어놓았듯 한국 축구는 토종 공격수가 없어 고민하고 있다. (박주영을 둘러싼 논란이) 꼭 홍명보 감독만의 탓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형 스트라이커의 맥이 끊긴 이유는 뭘까. 당대 최고 킬러로 이름을 날렸던 포항 스틸러스 황선홍, FC서울 최용수 감독에게 물어봤다.

 우선 십수 년 전부터 세계 축구의 흐름이 미드필더를 중시하는 쪽으로 바뀐 영향이 크다. 황 감독은 “중원에서 세밀한 플레이를 강조하면서 공격수들도 점점 미드필더 성향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연스레 유망주는 미드필더로 몰린다. 최 감독은 “예전에는 공격수가 선호 포지션 1위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미드필더를 많이 택한다. 신인을 찾기 위해 대학축구를 가봐도 이제 쓸 만한 최전방 자원 찾기가 힘들다”고 아쉬워했다.

 선수들이 스트라이커 역할을 꺼리는 경향도 있다. 골잡이의 주 임무는 득점이다. 하지만 전방에서 상대 수비와 몸싸움하며 공중 볼을 따내고 동료에게 연결해주는 궂은 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볼 키핑력’과 ‘제공권’ 능력이 필수다. 황 감독은 “1m85㎝ 정도 되는 키에 키핑력, 제공권을 갖춘 공격수가 있다고 치자. 이들 대부분이 중앙으로 나와 기술축구, 패스축구를 하기 원한다. 자신의 좋은 신체 조건을 이용해 잘 할 수 있는 것을 연마하지 않고 보기 좋고 화려한 플레이만 하려 한다”고 일침을 놨다.

 외국인 골잡이를 우대하는 K리그 풍토도 한 원인이다. 팀들이 즉시전력감의 외국인 스트라이커를 중용하면서 상대적으로 어리고 경험이 적은 국내 공격수들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 경기를 못 뛰니 당연히 성장이 더디다. 국내 공격수 육성을 위해 외국인 공격수 쿼터를 제한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고,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니다.

 당장 뾰족한 방법은 없다. 황 감독은 “국내 지도자들이 책임 의식을 갖고 의논해 차근차근 풀어갈 과제다. 선수들도 보조를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독일의 경우 프로 산하 유소년 팀부터 포지션별 훈련 프로그램이 정착돼 있다고 들었다. 전문 지도자가 공격수만 모아놓고 40~50분씩 집중 훈련을 실시한다. 우리 여건을 고려해 벤치마킹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윤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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