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문학…무엇이 향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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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책을 별로 안 읽는 나라에서 문학을 하는 사람의 수가 많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시와 소설, 아동문학 등 문인의 수는 거의 2천명을 육박하고 있으며, 해마다 수십 명씩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을 해서 먹고사는 것도 아니고 치부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대중성이 있다는 소설의 경우도 소설로써 생계를 간신히 꾸려가고 있는 사람의 수는 전체의 10분의 1미만이다. 따라서 문학으로써는 생활이 안 된다.
이것은 우리의 문학하는 행위가 직업이라기보다는 등산이나 낚시처럼 하나의 취미로서 이루어져 왔다는 말과 비슷하게 맞는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문학하는 사람들에게는 투철한 직업의식이 없다.
평론의 경우도 예외일 수는 없다. 물론 시나 소설에 비하면 80명 정도밖에 안되니까 그 수도 적고 정선되었지만, 그들이 그것을 대단한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소설이나 시 쪽보다도 더하다고 할 수 있다.
직업의식이 희박하다는 것은 자신의 문학에 대하여 많은 시간을 할애하거나 강한 철학 혹은 신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말과 연결된다.
물론 평론은 자기의 철학 없이, 아무 선입관 없이 남의 작품을 순수하게 비평할 수도 있지만, 자기의 문학적인 철학이 확고하게 서 있지 않으면 작품을 오히려 정확하게 평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고, 자기의 지론도 없이 갈팡질팡 하게 되는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의 비평문학은 글을 쓰게 하는 잡지나 신문에 문학정신이 고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글을 쓰려고 하는 의도가 다분히 있는 것 같다. 그러면 평론가는 없어지고 편집자만 존재하게된다.
이런 경향을 가지게 되면 편집자나 비평가가 함께 긍정적으로 보는 작가만을 상대하게되고, 오히려 정 반대되는 입장이나, 친소관계가 먼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일부러 거리를 두어야하는 입장에 놓여질 수도 있게 된다.
예를 들면 A라는 평론가는 B라는 작가에게 많은 관심을 보여주지만, B와 같거나, 오히려 B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C라는 작가의 작품에는 문학적인 관심을 전연 보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비평가는 C를 일부러 묵살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게되는데, 비평가는 묵살함으로써 쾌감과 권위의식을 느끼게될지 모르지만 C라는 작가는 소외되어 좌절감을 느낀다. 오늘날 비평가와 작가사이에 심심찮게 비 건설적인 불협화음이 일고있는 것도 바로 이런 현상 때문에 빚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비평가들의 소영웅주의라고 할 수 있다. 비평가는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를 가질 수 있고 그들과 인간적으로 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문학외적인 요소다. 그것과 문학적인 것과 비빔밥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비록 일면식도 없는 작가라고 하더라고 자기의 문학관에 맞는 작가라면 관심을 갖는 것이 참다운 비평정신이다. 마치 자기가 인정해 주지 않으면 작가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영향을 입은 작가가 자기에게 접근해 오거나 하는 경우에 관심을 보인다면 비평가의 소영웅주의는 충족될지 모르지만, 비평의 객관성은 허물어지고 궤변만 늘어나게 된다.
비평가가 이런 딱한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은 반드시 비평가 자신의 책임만이 아닌 경우가 많다. 지면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막강한 평론가나 그「그룹」에 인정됨으로써 출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속물근성의 작가들에게 오히려 더 큰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젊은 인기작가들이 자기를 추켜 주는 평론가를 상전처럼 모시고 다니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광경을 가끔 보게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학은 노동조합을 하듯이 머릿수로 하는 작업이 아니다. 이념적으로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의 문학세계를 더 실화 시키는 작업은 한다고 하더라고 문학하는 사람은 언제나 개체이며, 개체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평론가가 계주행세를 하며 비논리적인 논리로 떠들고 지면을 독차지함으로써 마치 문단의 패권이라도 잡을 듯이 행동한다는 것은 가장 탈속적 이어야하는 평론에는 심히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셋째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적인 작품에 대해서 역시 비평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작품은 비평가가 아니라 비전문적인 일반독자에게 맡겨두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민감하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자칫하면 독자들보다도 비평가가 더 둔한 비평을 하게되는「난센스」를 범하기 쉽다.
비평은 지극히 전문적이어야지, 문학용어만 부지런히 남용하는 일반론을 가지고서는 성립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문학풍토가 어려워서 그렇기는 하지만, 비평가들이「저널리즘」적 비평만으로 그 임무를 끝내지 말고, 작가들이 높은 문학적인 암시를 받을 수 있도록 지성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그런 평필을 들어야 할 것이다.

<차례>
ⓛ독자 없는 시의 양산
②상품화하는 소설
③뿌리 없는 아동문학
④평론기능의 반성
⑤반역하는 번역문학
⑥답보…외국문학의 수용
⑦봉쇄 당하는 창작희곡
⑧수필·신변 잡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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