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방뇨 1위 한성대입구역 … 서울역은 몰카 1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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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20일 0시50분 4호선 한성대입구역 승강장. 술에 취해 비틀대던 한 남성이 갑자기 바지 지퍼를 내렸다. “거기는 화장실 아닙니다!”

 막차 통제를 위해 승강장으로 내려온 윤제훈 한성대입구역 부역장이 뛰어오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눈이 풀린 남성은 역무원의 제지에도 막무가내였다. “화장실인데….” 혼잣말을 되뇌던 남성은 승강장에서 기계실로 통하는 철문을 주먹으로 힘차게 두들겼다. 실랑이 끝에 윤 부역장은 남성을 간신히 승강장 밖으로 끌어냈다. 이날 한성대입구역에서는 역내에서 무단방뇨를 시도한 취객 5명이 단속됐다.

 지난해 한성대입구역의 방뇨 단속 건수는 1163건.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1~4호선 지하철 통틀어 가장 많은 수치다. 윤 부역장은 “역무원이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변을 보는 승객들 때문에 매일 밤마다 전쟁을 치른다”고 말했다.

 지하철 내 기초질서를 어지럽히는 ‘지하철 무법자’의 행태는 각양각색이다. 갑자기 고성을 지르는 취객부터 물건을 강매하는 잡상인, 여성들의 치마 밑을 노리는 ‘몰카족’도 골칫거리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지하철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지하철 ○○남(녀)’란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서울메트로가 공개한 ‘질서저해자 단속현황’에 따르면 해마다 단속건수가 30만 건을 훌쩍 넘는다. 단속에 걸린 무질서 사범은 서울메트로 지하철 보안관이나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에 의해 고발 조치된다. 철도안전법에 따라 1회 적발되면 2만5000원, 2회 적발 시 5만원, 3회 적발 시 1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그나마 단속됐더라도 고발돼 처벌로 이어지는 비율은 지난해 0.6%에 불과했다. 2호선 전동차 내에서 불법 상행위를 한 이모(48)씨는 지난 한 해에만 78번이나 고발당했다. 하지만 과태료를 내더라도 장사하는 게 이익이라며 불법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

 질서저해자의 분포를 살펴보면 각 역마다 특성이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역은 잡상인·구걸자·흡연자·성범죄자가 많다. 특히 서울역 중앙 에스컬레이터는 ‘몰카족’들이 하루에도 2~3명씩 붙잡혀 ‘몰카 1번지’로 불린다. 을지로입구역은 노숙인 단속건수가 가장 많았다. 전체 노숙인 수는 서울역의 20% 수준에 불과하지만 24시간 개방되는 데다 화장실이 잘 갖춰져 있어 노숙인들이 몰려든다. 밤이 되면 역사 내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노숙인들도 종종 눈에 띈다. 4호선 종착역인 당고개역은 취객 단속건수가 다른 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전동차에서 잠이 든 취객들이 당고개역에서 잠을 깨우려는 역무원에게 행패를 부린다.

 서울메트로는 늘어나는 무질서 사범에 대응하기 위해 2011년 도입한 ‘지하철 보안관’을 지난해 2배로 늘렸다. 하지만 이들은 사법권이 없어 질서저해자들에게 적극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보안관은 취객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1호선 지하철 보안관 손성원씨는 “지난해 8월 한 남성 취객을 깨웠다가 소리를 지르고 발길질을 하는 바람에 병원 신세를 졌다”고 했다.

 매년 봄마다 지하철 기초질서 캠페인을 진행하는 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의 김원철 사무총장은 “법을 어겨도 경미한 처벌에 그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지하철 보안관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하고 질서저해 행위에 대해 과태료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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