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넓게 펼쳐지는 인생의 단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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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2일 (일부지방13일) 부터본지에 새소설 『풀잎처럼눕다』 를연재하는작가박범신씨는우리문단에서 「이질적」 인 존재로 통한다. 그는 이른바「초년대작가」처럼 화려하게 도받는 단계를 거치지 않았으면서도 작가적재능의 폭과 깊이를 서서히 드러내면서 최근 2,3년동안 갑자기 주목되는 작가가운데 한사람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그가 다루는 소재가 무궁무진하고 그 다양한 소재를통하여 인간사의 여러가지측면을 다각적으로 파헤쳐보이는 특이한 재능을 가지고 있기때문일는지도 모른다,
박씨는 73년신춘 「중앙문예」 에서 『여름의 잔해』 로「데뷔」 한이래 약 6년동안 50여편의 단편,6편의중편, 3편의 장편을 발표했다. 많은 분량이라고는 할수 없겠으나 그 장·중·단편들이 각기 제나름대로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것도 박씨의 특이한 점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가령 그의 단편만을 읽은 독자들은 그의 작품세계가 대체로 어둡고,등장인물들이 주로 정치적·경제적 소외층이며, 그리하여 그가 시대와 상황에대해 투철한 문제의식을 지닌 작가라고 생각할것이다.그러나 중편에이르면 『시진읍』이나 『읍내 떡삥이』 가 보여주는 것처럼마치 「스펙터클」 한 영화의 장면들을연상케 하듯 광활한 자연의 대지위에서 갖가지 흥미있는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이와 같은 단·중편의특질을 가리켜 평론가 임헌영씨는 『상징성과 현실의 조화』 라고 표현한다. 즉 박씨의 작품은 대체로 상징성이 강한 것이 특징인데 그것이 상징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비문학적독자라도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 들일수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작품속에 자주 나타나는 죽음의 형태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둠」 「종말」따위의 느낌을 갖게 하지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미적인 감각으로 승화시켜 받아 들이게 한다.
그런데 그의 장편을 읽으면 그가 작가로서와 문제의식만 중시하는것이 아니라「스토리·탤러」 로서의기능도 중시하고 있음을 발견하게된다. 그의 장편은 전체적인 분위기나 문체부터중·단편과는 큰차이가있어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생각할수 없을만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우선 작품전체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사뭇 밝아진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가볍고 즐거운 기분으로 자연스럽게 등장인물과 어울릴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해서 박씨가 가벼운 기분으로 손쉽게 장편을 쓴다는 것은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장편을 다 읽고 나면 그것이 단순한 이야기만은 아닌 보다 중요하고 절실한인간의 문제·삶의 문제에대한 새로운 일깨움을 던져 주기 때문이다.
가령 널리 읽힌 『죽음보다 깊은 잠』 은 한 여성이 부와 명예를 차지하기위한 욕망에 이끌려 3명의 남성을 사귀다가 좌절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러한과정중에 겪는 여주인공의심리적 갈등을 통해 우리는 확실한, 그러나 미처 느끼지 못했던 이 시대의 한단면을 엿볼수있는것이다.
또 문체로 보면 중·단편에서보다 훨씬 산뜻한 느낌을 준다.평론가 백승철씨에 의하면 『「스타카토」처럼 한 문장 한 문장의호흡이 딱딱 끊어지고 휘구사가 세련되고 신선하여 전혀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는 것이다.
이번에 박씨가 새로 시작하는 연재소설 『풀잎처럼눕다』는 그와 같은 장·중·단편의 특징가운데 장점들만이 골고루 조화를 이룬 새로운「스타일」의 소설이 되리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평론가 장윤익씨는『신문소설의 새로운「패턴」 을 보여줄 것이며80년대 신문소세의 좌표를제시할는지도 모른다』 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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