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당국자가 답할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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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측의 거듭된 남북당국자간 대화제의에 대해 북한측은 여전히 사회단체수준의 「전민족회의」 소집을 고집하고 있다.
북한측이 말하는 「정당」 「사회단체」 가운데는 아마도 조총련과 이른바 「통일혁명당」이란 이름의 유령단체도 포함되어있는 모양이다.
북한측의 이런 주장은 우리측이 제시한 당국자간 접촉방식과 비교해 현저한 차이가 있다.
우리측의 「당국자간 대화」는 합리성과 실현성을 그 기본논리로 삼고 있다.
하나의 정치실체와 또하나의 다른 정치실체사이의 공식적인 접촉은 마땅히 양측 수권대표인 공권력 기관을 창구로 해서 먼저 진행돼야한다는 논지다.
설사 그 접촉이 공권력간의 접촉으로 부터 시작해 점차 민간 「레벨」의 접촉으로까지 확대해나간다 할지라도 일단은 우선 모든 사안을 공권력 「레벨」에서의 실질적인 토의에 회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일처리 절차는 「주민만 있고 공권력은 없는」 무정부 상태가 아닌 다음에야 모든 시대와 지역의 모든 책임있는 정치실체들이 준수해온 보편적인 관행이요 통례였었다.
한국과 북한은 물론, 상대방을 공적으로 상호 인정하고 있는 사이는 아니다. 그러나 30여년간에 걸쳐 굳어진 양측간의 복잡다기한 정치·군사 사안들의 성격과 어려움에 비추어 남북한간의 문제해결도 불가불 그런 일반적 관행과 선례에 따라 차근차근 접근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만약 초현실적인 비약논리나, 무질서한 군중집회를 가지고서 남북간 현안문제들을 다루려고 한다면 질서정연한 문제해결에의 보장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뻔한 이치와 사리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은 무엇때문에 그런 현실무시·관행무시의 군중대회 소집만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자기들도 준수하기를 재차 다짐한 7·4공동성명에 의해 발족한 남북조절위는 또 무슨 명분으로 외면하는 것인가.
그것은 결국 북한측이 아직까지도 한국을 「혁명적 전복의 대상」으로서 바라보려는 의도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랄 수 밖에 없겠다.
북한이 주장하는 「전민족대회」란 한국의 공권력을 『북쪽의 공산주의 사회단체들을 포함한 많은 정당 사회단체중의 한 개』로 격하시켜 이를 「통일전선전략」에 따라 고립화시키고 전복해버리겠다는 공산당 특유의 「혁명전략」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전략추구는 그야말로 지구상의 가장 폐쇄적인 교조주의자로 정평이 나있는 북한공산집단만의 무용한 도로로 그치고 말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혁명유희나 혁명조작같은 것으로 호락 호락 속아넘어갈 만큼 어수룩하지도, 취약하지도 않으며 설사 이편의 복합적인 정당·사회단체들이 그쪽의 어용 외곽단체들과 대면한다 가정하더라드 공산주의 전복활동을 거부하는 공통의 기본입장에선 강력한 단결력과 일체성을 발휘할 것이니 말이다.
북한측은 아무래도 이편의 사정에 관해 무언가 잘못 판단하고 있고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것 같다. 분명히 말하지만 개방적 복합사회로서의 한국사회 모든 국민들의 민주주의적 단합능력과 대공 보조일치를 과소평가하여 그 오판에 바탕한 「통일전선전략」에 더이상 연연하지 않는것이 좋겠다.
이제는 북한당국자가 직접 나서서 답을 할 때다. 그리하여 오도된 노선을 속히 청산하여 보다 현실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처신방법으로 전환, 하루속히 양측 당국자간의 공명정대한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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