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비」이란 왕이 망명하던 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팔레비」왕의 출국소식이 방송「뉴스」를 통해 알려지자 「테헤란」시가는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과 그들의 차량으로 완전히 뒤덮였다. 대낮인데도 자동차들은「헤드라이트」를 켜고 「클랙슨」을 있는 대로 울려댔다.『왕은 영원히 갔다』고 외치는 군중들은「팔레비」왕 망명을 멀리서 조종했던 회도교 지도자 「아야룰라·호메이니」옹의 초상화를 치켜들고 『회교공화국만세』를 부르짖기도 했다.
어떤 청년은 상의를 모두 벗어던진 채 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었으며 어디서 들고 나왔는지 「초컬릿」·사탕·과자 등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처녀들도 있었다.
남녀노소가 모두 노래를 부르고 발을 구르며 춤을 췄다. 그들은 두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 흔들어 보이거나 서로 부둥켜안고 뺨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어떤 「버스」에는 『「이란」이 새로 탄생했다』는 낙서가 크게 써져있었고 「테헤란」 의 중심가인 「팔레비」가에는 「팔레비」가라는 표지만이 뜯겨져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어떤 시민들은 왕의 초장화가 들어있는 지폐를 꺼내 얼굴 부분을 손가락으로 뚫어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군중들 속에는 군인들도 더러 끼어있었고 일단의 청년들이 자진해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본 기자도 군중들 틈에 끼어 빠져 나오느라 상당 시간 고생했다.
○…환희에 넘친 청년들은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정지시키고 운전사들에게 사탕을 나누어주었으며 시민들은 서로 장미향수를 끼얹어주면서 기쁨의 포옹을 나누었다.
기쁨을 가누지 못해 거리에서 춤을 추던 젊은이들은 자동차와 사람들로 거리가 뒤범벅이 돼 교통이 마비되자 즉석 교통정리에 나섰으나 엉터리 정리를 하는 바람에 자동차끼리 부딪쳐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밤이 되자 승용차·「버스」·「트럭」이 축하의 경적을 울려대는 속에 시민들의 기쁨에 넘친 함성과 교통혼란으로 「테헤란」도심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시민들은 『「양키·고·홈」. 왕은 떠났다. 이제는 미국인들이 떠날 차례』라고 반미구호를 외쳐댔으며 「테헤란」의 모든 건물들과 차량들의 유리창 및 시가지에는 「파리」에 망명중인 반정 회교지도자 「호메이니」 옹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한편 일부시민들은 극도로 혼란한「테헤란」시의 모습에 놀라움을 나타냈다.『이것이 무정부 상태의 표본』이라고 말한 한 여학생은 『이러다간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지어질지 모르겠다. 「호메이니」 옹이 귀국한다해도 별다른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중년부인은 『이들 중 절반은 공산주의자들이며 그들은 전혀 종교를 믿지 않는다. 나는 내가 지금 해야 할 유일한 행동은 국왕을 뒤따라 외국으로 나가는 길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장래를 걱정했다.【테헤란=조동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