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2409> 제61화 극단「신협」<46>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다방 「동방살롱」을 인수, 개업하고 이틀뒤 다방에 나가니 탁자·의자·전축등이 다방 밖으로 끌어내져 온통 길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깜짝 눌라 『이게 웬일이냐』고 했더니 세무서서 다방차압을 했다는것.
『무슨 소리야, 개업 이틀밖에 안되는데 미납이라니-.』 그러나 사정은 엉뚱한데에 있었다. 전전주인이 세금을 안냈다는 것.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어쩔수 없는 노릇. 그래서 전전주인의 밀린 세금을 대신 내고 흩어진 탁자와 의자등을 다방안으로 다시 붙여놓았다. 매매전에 이런 것등을 다 알아보고 해야하는데 세상 물정을 몰랐기 때문에 당한 곤욕이었다.
그때만 해도 문화인들이 일정한 일자리를 갖고 정착한 이가 드물었다. 시내에 나오면 갈곳이라곤 「동방살롱」뿐. 각 분야 문화인물로 「동방살롱」은 하루종일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바글바글 했다.
다방에서 얘기를 나누고.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평론도 쓰고 했다. 그러나 이를 어쩌나. 차를 마시는 이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 대부분이 그냥 왔다갔다하면서 하루종일 자리만 차지했다. 그때 「코피」값이 한잔에 10원. 그런데 길건너 막걸리 한잔은 5원이었다.
그래서 많은 문화인들이 「코피」한잔 대신 길건너의 막걸리 두사발을 더욱 즐겼다. 두사발이면 점심요기도 되고 제법 얼큰하기도해 「코피」를 따로 마실 필요가 없었다.
술에 취한 한 문인이 벌겋게 단 난로를 화장실로 착각, 소변을 보다가 난장판을 이루었는가하면 밤이면 술이 얼큰히 취한 가난한 화가끼리 시비가 붙기가 일쑤, 다방 「동방살롱」은 하루도 온전한 날이 없었다.
이런 지경이니「코피」가 제대로 팔릴리가 만무였다. 혹시 마시는 이가 있어도 걸핏하면 외상이었다. 다방을 해서 생활은 고사하고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팔려고 해도 인수할 사람이 없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1년을 끌고보니 집판돈 2백40만원이 그대로 홀랑 다 날아가 버렸다.
다방을 넘겨주면서 외상장부를 정리해보니 가관이었다. 몇백원 몇천원 정도의 외상을 지는 사람은 수두룩하고 1만원넘는 사람도 10여명이 됐다. 한잔에 10원하는「코피」값 외상이 1만원이 넘었으니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팔고 나니 그만, 외상값을 받을 길이 없었다.
내가 장사를 하겠다고 나선 자체가 일종의 「난센스」였다.
이런 와중에서도 연극은 계속됐다.
1958년 9월 필자의 연출로 유치진원작의 『한강은 흐른다』를 공연했는데 이것은 유선생이 세계1주를 하고 귀국한 뒤의 첫 작품이었다. 유선생은 이 작품을 완성해놓고는 제목을 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중 우연히 유선생과의 술자리에서 내가 노래하나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사중에 『한강은 쉬지 않고 흐른다』라는 대목이 있었다. 이 노래는 3·1운동 당시에 널리 불려진 노래로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내용이었다. 이 노래를 들은 유선생이 그대목이 좋다고 작품이름을 그대로 붙였다.
이 연극은 「신협」이 다시 국립극장과의 관계를 끊고 자립한 공연이었는데 다행히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연극에 유계선이 출연, 알찬 연기를 보여준 것이 기억난다.
『한강은…』뒤를 이은 것이 「테네시·윌리엄즈」원작의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였다. 을지로입구에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원각사란 소극장이 새로 생겼는데 이 작품은 그곳서 공연됐다.
그런데 나는 이 연극을 미국여행때 「엘리어·카잔」연출로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때 대단한 감동을 받았는데 그 감동이 나의 연출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엘리어·카잔」은 객석을 향한 제4면을 멋지게 이용하는 연출수법을 썼다.
즉 그곳에 큰 거울이 걸려있는 것처럼 하고 배우가 객석을 항해 「넥타이」도 매곤 했는데 퍽 이색적으로 보였다. 나도 그대로 흉내를 냈는데 역시 관객들이 새롭게 받아들이며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나는 이 연극을 끝내고 회의에 빠졌었다. 새롭다는 것을 도입했을뿐 예술을 창조하는 연출가로선 이 연극이 나에게 무슨 「플러스」가 있었나 하고. 흥미로왔다는 것뿐 창조의 희열을 맛볼수 없는 모방이 무슨 가치가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젊은 연극인 사이에선 새롭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큰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착각, 외국의 새로운 연극만을 모방하려 하는데 이것은 큰 잘못인 것이다. 자기것의 창조가 예술에선 참으로 필요한 것이며 그래야만 그 나름대로의 성공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