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전 시대」의 막 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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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술계는 한해 동안 커다란 새 흐름을 보여줬다. 가장 괄목되는 움직임은 민전 시대의 개막이요, 둘째는 막대한 국전 전시작품의 도난과 가짜 그림 소동이다.
이밖에도 각 지방에 있어서의 현대미술제 개최와 국립현대 미술관의 기능 촉구 등을 둘 수 있다.
민전 시대의 개막은 종래 관전(국전)이 반세기 동안 따른 병폐를 탈피하기 위해 중요 신문사가 일제히 마련한 미술전이다.
중앙미술 대전과 동아미술 대제가 금년부터 시작됐고 일시 중단됐던 한국미술 대상전도 체재를 바꿔 재개된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필연적인 반영이며 따라서 미술계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젊은 작가에게 진출의 문이 넓어졌음을 의미할 뿐더러 제작 활동에 커다란 자극을 춤으로써 그 동안 획일화되고 있던 작품세계가 훨씬 폭 넓어질 것』이라고 이경성 교수(홍대)는 말한다.
이러한 민전들이 아직은 과도적 형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한국 미술계에 새로운 평가의 「버로미터」를 제시할 것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가을 화랑 가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것은 가짜 그림 소동에 있단 국전 전시작품의 도난 사건이다. 우리 나라의 가짜 그림 수준은 결코 감쪽같다고 할만큼 뛰어난 것도 아니고 지능적인 수법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런 위작이 화랑가 일각에서 공공연하게 횡행돼온 것은 곧 상가의 무질서와 구매자의 맹목적인 욕구를 반영한 기현상.
그림 값이 나날이 급등함에 따라 오로지 투기 대상으로만 계산하려는 허영의 눈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빚어 낸 부작용이었다.
미술품에 대한 사회 일반의 그릇된 인식은 끝내 국전 전시작품의 막대한 도난사건으로 확대돼 버렸다. 11월 19일 대전에서 전시 중 대작 57점을 도난 당한 채 아직도 오리무중에 싸여있는 이 사건은 도난 당한 수량도 놀랍거니와 유화 「캔퍼스」를 면도날로 도려간 점이 더욱 경악케 하고 있다. 이는 금년에 저명화가의 화실을 넘나든 도둑들과 함께 현대 미술품에 대한 사의의 관심도를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사건이라 하겠다.
이런 사건들과 거의 동시에 제기된 다른 하나의 문제는 국립 현대미술관의 기능을 바로잡자는 촉구였다. 금년 가을 여러 미술지들이 일제히 이 문제를 취급함으로써 우리 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이 국립기관이 얼마나 유명무실한 존재인가를 지적했다. 예산·요원·시설의 어느 한가지도 구비되지 못한 현대미술관이기 때문에 사회교육 기관으로서의 구실을 전혀 못하며 미술계의 정지작업에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더구나 『한국의 경제발전이나 고 미술품을 위한 박물관 설치에 비해 현대미술관은 너무 소외돼 있다』고 미술평론가 이귀열씨는 정책적인 배려를 촉구했다.
서울에 집중돼 온 미술계의 활동이 지방으로 확산돼 가는 것도 두드러진 현상의 하나. 대구의 현대 미술제는 71년부터 시작됐지만 광주·김산·춘천·전주에서도 각각 개최돼 주목되거니와 서울 작가의 지방전도 빈번해지고 있다.【이종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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