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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지나면 자식들 발길 줄어 … 병원비도 밀리기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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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은 지난해 기준으로 45만여 명(요양병원 26만1931명, 요양시설 19만5031명). 전체 노인(619만 명)의 약 7%다.

 이들의 만족도는 어느 정도일까. 본지는 전국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7군데를 심층 취재했다. 노인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지난해 경기도 안산의 한 요양원에 입소한 김모(87) 할머니는 “자식들과 같이 살 땐 혼자 있으면서 다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다”면서 “여기서는 맘이 편하다”고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노인요양시설 환자 600명을 설문조사했더니 서비스 전반에 대해 만족한다는 응답자가 81%였다.

 하지만 가족들 손에 이끌려 들어간 환자도많다. 경기도 부천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혈액투석 환자 한모(73)씨는 “자식들한테 집도 사주고 유학도 보내주고 그렇게 키워서 결혼시켰는데, 귀찮다며 나를 이런 데 넣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17일 경기도 부천의 요양병원에서 한 환자가 창가에 앉아 있다. 뇌졸중으로 3년 전 입원했다. 수족을 거의 쓸 수 없어 휠체어에 의존한다. 병원 관계자는 “가끔 딸이 찾아와 산책을 나간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생활환경이 좋아도 자식 등 가족이 찾아오지 않으면 버려졌다는 생각에 노인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6개월~1년 지나면 자녀의 부모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다”며 “처음엔 자주 오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연락도 안 되고 병원비를 체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충남 지역 한 요양병원의 80대 초반 할머니는 가족(자녀 5명)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치매가 심해 누워서 지낸다. 병원 측에서 가족 측에 강제퇴원 방침을 내비치고 내용증명을 보내도 소용이 없다. 병원 관계자는 “처음에는 형제들끼리 병원비를 나눠 내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돈 문제로 싸움이 붙었다”고 전했다.

 부모를 시설에 보내는 이유는 저마다 사정이 있다. 치매·뇌졸중 등 증세가 심해서 거동이 많이 불편한데 돌볼 가족이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다. 경남 양산의 요양병원에 부모를 모신 김모(58)씨는 “형제가 다섯이나 되지만 모두 생업을 포기하고 수발만 들 수는 없지 않으냐”며 “전문적인 시설에서 간병 받는 게 부모님한테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설 입소 이후 건강이 더 나빠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뇌경색으로 신체의 왼쪽이 마비된 박모(80)씨는 경기도 안산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한 뒤 우울증 증세가 생겼다. 경기도 부천의 한 요양병원에 5년째 입원 중인 이모(77) 할머니는 “화장실에 갈 수 있다고 해도 그냥 기저귀를 차라고 한다”며 “한 달 전만 해도 걸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힘이 없어 못 걷는다”고 하소연했다.

  서울대 권순만 보건대학원 교수가 지난해 요양시설 입소 노인 3000명을 조사했더니 입소 전 요양병원(11.2%)이나 다른 요양시설(9.1%)에서 지내다 온 경우가 많았다. 권 교수는 “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 입장에서 보면 노인들이 오면 수익이 늘기 때문에 놔주지 않고 자식들은 수발 부담을 덜 수 있다”며 “시설에 있지 않아도 될 사람을 맡기는 경우에는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시설에 입소하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도 커진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종양내과 교수는 “최근 10년 동안 시설에서 주로 노인 만성질환자를 돌보다 보니 시설 사망자가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가족과 지역사회가 노인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새로운 규범을 만들고 거기에 맞게 틀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김혜미·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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