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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현장 13㎞ 앞 교전 … 기업들, 방탄차·경호원 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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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가족들도 빨리 (바그다드에서) 나오라고 난리일 정도다. 우리 기업들의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황의태(50) KOTRA 바그다드 무역관장은 17일에도 전화기 옆을 떠나지 못했다. 이라크 내전 발발 이후로 안전 여부를 묻는 기업들의 전화가 폭주하기 때문이다. LS산전 등 우리 기업 2곳이 진출한 북부지역이 반군에 함락되면서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은 속보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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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국가스공사는 초긴장 상태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이라크 북부 바이지에서 수니파 반군과 정부군의 교전으로 가스관 연결 공사가 중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이 회사 한만호 해외공급팀장은 “공사장에서 13㎞쯤 떨어진 곳에서 교전이 일어났다”며 “현지에 근무 중이던 직원 3명을 국제공항이 있는 아르빌로 대피시킨 상태”라고 말했다.

 이라크 내전이 확산되면서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에 ‘안전 비상등’이 켜졌다. KOTRA에 따르면 이라크 현지에는 101개 기업, 138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까지 국내 업체나 교민 피해 사례는 없지만 사업 차질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가스공사는 올해 안으로 상업생산을 예정했던 바스라 유전 프로젝트를 사실상 포기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비상대책반을 가동하고 있으며 사태 장기화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바지안·상가우사우스·하울러 등 3개 광구에서 원유를 생산 중인 한국석유공사 역시 파견 직원 6명을 모두 두바이로 대피시켰다. 전면전이 발생하면 아예 이라크에서 발을 뺀다는 비상계획도 세워놨다. 반군 점령지역인 모술에서 변전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던 LS산전 직원 2명은 급히 귀국길에 올랐다.

  현지에 진출해 있는 국내 건설업체들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전 지역과 가장 가까운 곳은 한화건설이 주택 10만 호를 짓는 비스마야 신도시 현장이다. 이 회사는 이라크 파병 경험이 있는 자이툰부대 출신 40명으로 자체 보안팀을 꾸렸다. 장갑차로 무장한 이라크 군인·경찰도 현장을 경호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과 대우건설은 현장에 무장 경호원을 배치하고 직원들은 반드시 방탄 차량으로 이동하도록 조치했다.

 업계에선 내전이 길어져 공사가 지연되거나 자칫 현 정부가 무너져 공사비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무엇보다 걱정거리는 원유 수급과 기름값 인상이다. 이라크는 세계 2위인 하루 332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내정이 불안해지면서 17일 현재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109.27달러로 일주일 전(105.14달러)보다 3.9% 올랐다. 해운업계에는 이라크 사태가 양날의 칼이다. 이 지역 운송 리스크가 커지면 운임이 올라가면서 ‘고위험 특수’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2003년 이라크전 때는 80~90대이던 중동~극동 간 유조선 운임지수(WS)가 152.3까지 치솟았다.

정부는 이라크에 머무는 우리 국민 1300여 명의 탈출 계획을 점검하는 등 비상 체제를 가동 중이다. 정부 권고에 따라 지난 주말부터 4개 기업 소속 24명이 바그다드 등으로 대피했다. 정부는 이라크 진출 기업들로부터 철수 계획을 제출받아 검토 중이며, 긴급 상황 발생 시 아덴만에 파병된 청해부대 등 우리 군을 대피 작전에 투입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김현예·최현주 기자

◆수니·시아파=예언자 무함마드의 조카이자 사위인 이슬람의 4대 칼리프 알리가 살해된 뒤 갈라진 양대 종파다. 예언자 혈통이 아닌 칼리프를 인정하는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언행과 관행을 의미하는 수나를 따르는 사람을 말한다. 혈통주의를 따르는 시아파는 ‘알리의 당파(shiat al-Ali)’를 일컫는다. 수니파는 종교지도자 이맘을 단순한 예배를 인도하는 이로 여기지만 시아파는 이맘을 신에 의해 선택되는 최고성직자로 따른다. 수니파는 전 세계 16억 무슬림 중 약 90%를 차지하며 사우디아라비아가 맹주국이다. 2억 명 정도로 추산되는 시아파는 이란이 맹주를 자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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