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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살아난 사람은 안다 물흐르듯 살아야 된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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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고진하 목사는 “요즘은 마당에 난 들풀을 뜯어먹으면서 많이 배운다. 그들은 잘난 놈, 못난 놈 가리지 않고다 준다. 그러면서 자라고, 또 자란다. 끝없는 생명력, 무한한 에너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신용 사진작가]

그는 울었다.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았다. “그동안 책을 여럿 썼지만 집필 중에 운 적은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16일 서울 정동에서 고진하(61) 목사를 만났다. 그는 한때 행낭 하나 달랑 메고 인도를 누볐다. 개신교 목회자이면서 10년 넘게 힌두교 고대경전 『우파니샤드』를 묵상하고, 『노자』를 공부하고, 거기에 담긴 영성을 노래했던 시인이다. 그랬더니 성경이 더 잘 읽힌다고 했다. 이번에는 그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30명을 만났다. 그리고 일종의 투병기인 『쿵쿵』(넥서스크로스)이란 책을 썼다. 쿵쿵, 심장 소리다. 죽음의 코앞에서 돌아온 이들이라 울림은 더 크다.

 - 어찌 보면 인간의 삶이 투병기다.

 “거의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이 다시 사는 삶, 거기에는 감사의 물결이 흐르더라. 그게 인간이 갖고 있는 아픔의 위대함이라고 본다.”

 - 인간의 아픔, 왜 위대한가.

 “아픔은 아주 짧은 시간에 인간을 바꾸어 놓는다. 가서 보니 병원이 수도장이고, 수도원이더라. 수술실에도 들어가 봤다. 뇌를 절개한 모습도 보고, 대장암 수술을 위해 벌려놓은 광경도 봤다. 그게 모두 삶과 죽음의 기로였다.”

인간이 갖고 있는 아픔의 위대함 느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두개골 함몰과 광대뼈 골절, 갈비뼈가 폐를 찌르는 중상 등으로 3주간 의식을 잃었던 젊은 여성 무용수도 있었다. 살아날 확률은 10%에 불과했다. 기적처럼 눈을 떴다. 재활을 거쳐 다시 무용을 하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출구 없는 동굴에 갇힌 것이 아니다. 단지 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그 터널은 반드시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 끝없는 어둠이 아니라, 단지 긴 터널. 그걸 지나면 어찌 되나.

 “일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뀐다. 가령 아내가 밥 챙겨주는 걸 다들 당연하게 여기지 않나. 다시 살아난 이들은 거기서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너무도 당연했던 일상이 이제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 일상이 되더라. 그렇게 삶이 달라지더라.”

 - 아픔이 십자가가 된 건가.

 “그렇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지독한 고통을 겪고서 돌아온 이들이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이제 ‘덤’으로 산다.”

콩 묻으면 콩떡, 팥 묻으면 팥떡이 돼야

 사도 바울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산다”고 했다. 고 목사는 그게 바로 덤으로 사는 거라 했다. “사람은 아파 봐야 안다. 허우적거려 봐야 안다. 그래야 거기서 벗어나게 된다.” 그는 덤으로 살 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롭다고 했다. 그걸 떡에 비유했다. “인절미를 봐라. 콩고물을 묻히면 콩 인절미가 되고, 팥 고물을 묻히면 팥 인절미가 된다. 나도 인절미처럼 살고 싶다. 그래서 저분이 묻히시는 대로 살고 싶다.” 그는 그걸 ‘적극적 수동성’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노자』를 자주 읽는다. 『노자』에 나오는 무위(無爲)의 삶이라는 게 뭔가. 결국 적극적 수동성이다. 덤으로 사는 거다.”

 - 가령 콩떡이 되고픈 사람이 있다. 그런데 팥 고물이 묻었다. 그에겐 고통이지 않나.

 “살다 보면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도 있다. 그런 ‘안 됨’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럴 때 내 고집이 무너지고, 내 존재가 확장된다. 강물을 봐라. 그냥 낮은 데로 흘러간다. 자기 에고가 없으니까 그렇게 흘러간다. 그래서 강물이 나중에 바다가 되는 거다.” 듣고 보니 덤으로 사는 삶은 무기력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유연하면서도 깊고 강했다.

 고 목사는 강원도 원주에서 닭 키우고, 텃밭 가꾸며, 시골 목회를 한다. 그는 교인들에게 “굳이 멀리 가서 뭘 배우려 하지 마라”고 당부한다. “1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밤에 별을 좀 보시라. 답답하면 개울에 가서 물 흘러가는 것도 보시라. 자연이야말로 우리에게 큰 경전이다. 대경전이다. 성경과 불경의 문자가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니다. 그 속에 흐르는 생명이 우리를 구한다. 자연 속에 그런 생명이 있다. 때로는 자연이 우리에게 그런 길을 보여준다. 덤으로 사는 법을 일러준다.”

백성호 기자

◆고진하 목사=1953년 강원도 영월 출생. 감리교 신학대와 동대학원 졸업. 신학을 전공한 목사이면서 힌두교 경전과 노자 사상을 오랫동안 파고 들었다. 87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으로, 숭실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저서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얼음수도원』『수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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