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도에 여자 발길…금기를 깼다|광부 부인들 채탄막장을 견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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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광산의 갱도에 부녀자가 들어가지 못한다는 오랜 금기가 깨졌다. 오히려 광부부인들을 채탄막장까지 들여보내 남편의 힘든 작업광경을 보임으로써 탄광촌 주부들 사이에는 알뜰살림의 새바람까지 일고있다.
강원도 삼척군 도계읍 석공도계광업소(소장 홍영표·43)는 지난 6월부터 국내 처음으로 「광부부인 채탄막장견학」을 돌아가며 실시, 4개월만에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하 수천m의 갱도에서 채탄작업을 하는 남편들의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알게된 주부들은 ▲광부남편 잘 섬기기 ▲가정분위기 순화 ▲근검·절약 저축운동 ▲전 가족의 광산보안운동 ▲연탄아껴쓰기운동 등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광산갱도에 부녀자들을 들여보낸다는 것은 지금까지 상상할 수도 없던 일. 광부들은 여자에게는 귀신이 붙어 꼭 사고를 부른다고 믿고있기 때문이다.
만약 갱구 근처에 여자가 얼씬거리기라도 하면 귀신을 좇고 액땜을 한다고 소금을 뿌렸었고 광부들은 출근길에 여자가 앞을 가로지르기라도 하면 그날은 일을 하지 않고 집으로 되돌아갈 정도.
이런 금기를 깨고 도계광업소가 「광부부인 채탄막장견학」을 시도한 것은 『부인들이 남편의 힘든 작업광경을 보면 알뜰마음이 싹틀게 아니냐』는 이훈섭 석공사장의 제안으로 비롯됐다.
도계광업소는 지난 6월25일부터 주1회 15명 이내씩 희망자순으로 채탄막장을 견학시켜 4개월간 2백50여명을 갱에 들여보냈고 그동안은 별다른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계광업소 부녀회장 황정숙씨(37)는 막장견학 이후 광부남편을 잘 섬겨 가정불화가 없어졌고 낭비·방종 등 폐습이 없어지고 1가구1통장제가 실현됐으며 광산사고율이 67%나 줄어「재해예방은 가정에서부터」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밖에 6개 사택촌별로 폐품수집운동과 홀치기 등 부업에 나서 희망사택촌의 경우 벌써 1백20만월의 부녀회기금을 마련했고 부서진 연탄을 한데 모아 다시 찍어쓰는 운동을 펴고있다.
황 회장은 연탄 1백장에 1장꼴로 부서지는 연탄을 다시 쓰면 연간 전국에서 20만t의 석탄을 아낄 수 있다면서 이 운동은 정부가 적극 뒷받침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녀회 부회장 김옥자씨(31)는 이 같은 주부들의 의지와 슬기로 광산촌의 생활구조가 탈바꿈. 광부들마다 평균 14만원의 봉급 중 5만원씩을 저축하는 목표로 희망에 부풀어있다고 말했다. <삼척=탁경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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