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고 짠 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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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중음식점의 차림표를 보면 매운 음식이 대부분이다. 매운탕·비빔냉면·육개장·김치찌개, 어느 것 하나 맵지 않은 것이 없다. 여기에 갖은 양념까지 곁들이면 맵고·짜고·얼큰하고·새콤하고…그야말로 혀의 기능을 총동원해야하는 맛이 된다.
언제부터 우리의 식생활이 이처럼 거칠어졌는지 궁금하다. 원래 우리는「구수한 맛」을 전통적인 미각으로 여겨왔다. 은근한 향취로 입 속에서 절로 넘어가는 몽근한 음식을 우리의 선인들은 제일로 꼽았다. 어딘지 우리 기분에도 맞은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음식마저도 자극적이라야 직성에 맞는 양으로 생각한다. 세풍에 맞추어 음식도 변하는 것인가 보다.
고추가 우리 나라에 전래된 것은 별로 오래지 않았다. 16세기 말께인 이조광해조때 흔히 일본을 거쳐 전해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임진란 때 「가또」(가등청정)가 우리 나라에서 고추를 가져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그 경로는 분명치 않다.
고추의 원산지는 멀리 중앙「아메리카」. 15세기 말엽「콜롬부스」가 이것을「스페인」에 가지고가「유럽」에 퍼뜨렸다. 중국에는 그 뒤에야 전해졌다.
고추는 우리의 고유음식에 일대 혁명을 가져 왔다. 우선 김치가 매워졌다. 고추가 들어가면서 김치 속엔 젓갈이나 육류도 함께 쓰이게 되었다. 매운 맛은 그 비린내를 없애주면서 김치를 한결 걸쭉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옛 김치는 다만 무를 소금에 절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김치의 유래를 밝혀주는 이규보(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에도 그렇게 기록되어있다. 오늘과 같은 김장김치가 우리생활에 자리잡은 것은 불과 1세기쯤 되었다.
필경 김치를 짜게 담그는 것도 옛 습관인지 모르겠다. 요즘은 여름 음식의 저장이 간편해지면서 굳이 짠 김치를 담글 필요는 없어졌다, 더구나 짠 음식은 우리의 심장이나 혈관을 긴장시키며 내분비기능에도 나쁜 영향을 주어 건강에는「마이너스」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매운 음식도 역시 예의는 아니라.
영양학자들은 인체에 적합한 염분은 하루5g,고추는2g(차 술의 절반)정도라고 말한다. 실제로 한국인의 염분섭취는 권장량의 4배에 달한다. 마늘의 경우도 일본학자들의 보험에 마르면 하루한쪽으로 충분하다.
세파도, 우리의 말씨도, 음식도, 의상도 모두가 자극적으로만 되어간다. 이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서로 상승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음식만이라도 싱겁고 구수하게 순화해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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