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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메르켈 성공 뒤엔, 할 말 하는 참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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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
슈테판 코르넬리우스 지음
배명자 옮김, 책담
384쪽, 1만6000원

15일로 세월호가 침몰한 지 두 달을 맞는다. 어이없는 참사 앞에 온 국민은 아직도 공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지도자들은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허둥대기만하고 더러는 악수(惡手)를 두기도 했다. 리더십은 온데간데 없고 국론은 쪼개졌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는 ‘위기 극복의 아티스트’였다. 그가 자랐던 동독, 소속 기독교민주당(기민당), 조국 독일과 유로존의 위기가 없었더라면 메르켈은 그저 평범한 지도자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메르켈을 ‘철(鐵)의 여제(女帝)’로 키운 바탕은 바로 위기였다. 그에 대한 공인된 전기로 평가받는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엔 숱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무쇠처럼 단련돼온 메르켈의 비결이 담겨있다. 독일어판 『Angela Merkel』은 지난해 3월 나왔다. 저자는 메르켈이 정계에 처음 발을 디딘 1989년부터 그를 가까이서 지켜봐온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의 슈테판 코르넬리우스 외교정치국장이다.

메르켈은 행동에 앞서 침묵하며 깊이 연구한다. 그의 침착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는 언뜻 지루해보이기도 하지만, 8년 이상 흔들림 없이 권력을 유지한 비결의 하나로 꼽힌다. [중앙포토]

 메르켈은 독일 정계에서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흡수통일의 주체였던 서독이 아닌 흡수대상이었던 동독, 정계의 절대다수 세력인 남성이 아닌 여성, 중도우파 기민당의 대세인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출신이다. 게다가 정치학과는 거리가 한참 먼 물리학자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같은 화려한 언변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같은 절대 카리스마도 갖추지 못했다. 저자는 이런 모든 악조건을 뛰어넘어 보란듯이 21세기 초 세계 최고의 여성지도자 반열에 오른 메르켈식 경쟁력의 원천을 탐구했다.

 ‘위기는 기회’라거나 전화위복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정치인이 메르켈일 것이다. 독일이 통일될 때까지 35년을 폐쇄된 동독 공산주의 체제에서 성장한 것 자체가 그에겐 가장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개신교 목사 아버지와 라틴어·영어 교사였던 어머니의 영향 아래 길러진 특유의 활달함, 긍정적 마인드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키우는 자양분으로 작용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민주약진(DA)’에 입당한 이후 3선 총리가 된 지금도 메르켈의 핵심 어젠다는 ‘자유·정의·연대’다.

 독일의 정치환경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집권 1기엔 중도좌파 사민당과의 대연정, 2기엔 친기업 성향의 자민당과의 보수연정, 3기에는 다시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잘 꾸려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타협과 설득의 지휘자로서 메르켈은 걸핏하면 어깃장을 놓는 연정파트너, 제멋대로인 기사당(기민당의 자매정당)과 큰 불협화음 없이 무난하게 조율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년째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유럽 최강의 경제대국을 이끌고 있는 힘은 무엇일까. 저자는 우선 용인술의 달인 메르켈을 주목한다. 메르켈은 직언을 할 수 있는 참모를 곁에 두고 무한신뢰한다. 이들과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 정확한 민심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최적화된 대책을 추출해낸다. 우리 정치인들이 곱씹어봐야할 대목이다.

 치밀함은 동독출신의 경험없는 메르켈을 일거에 독일은 물론 유럽 최고의 정치지도자로 만든 무기였다. 대화 상대방을 깊이 연구해 결국엔 돌직구로 KO펀치를 수 없이 날렸다. 2005년 12월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은 ‘풋내기’ 메르켈을 일약 단숨에 최고의 외교가로 올려놓았다. EU 예산협정에 대해 모든 세부 내용을 꿰고 탄탄한 주장을 펼 수 있었던 참석자는 ‘준비된’ 메르켈 밖에 없었다.

 메르켈은 대국민연설 같은 거창한 이벤트를 피했다. 대신 보좌진들과의 조용한 전투를 즐겼다. 문제를 잘게 쪼갠 후 해결책을 하나씩 찾는 정밀타격형을 선호했다. 작은 보폭, 합의, 타협의 대가였다.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하면 하위직책 팀장이나 담당 사무관에게도 설명을 부탁했다. 가늠하기, 장단점 계산하기, 요구하기, 압박하기, 그리고 대가를 얻었으면 인정하기. 이것이 메르켈 방식이다. 어느새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테크노크라트들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목소리만 큰 위인들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측근들과는 수다를 즐기면서도 늘 행동에 앞서 침묵하며 깊이 연구한다. 그래서 메르켈이 침묵 모드로 들어갔을 때 주변은 모두 긴장한다.

 또 다른 장점으로는 원칙과 단호함을 들었다. 국제외교무대에서 수세적이었던 독일을 ‘깨어난 거인’으로 만든 것은 유로존 위기와 메르켈의 치밀한 전략이었다.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이 베를린을 주시할 때 그는 긴축과 경제개혁, 그리고 원칙을 강조하며 상대적으로 손쉬운 ‘돈퍼붓기’를 거부했다. 메르켈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피원조국도 있었지만 그는 꿋꿋하게 ‘지속가능한 유럽’을 설파했다.

 메르켈은 박근혜 대통령과 여러모로 비교된다. 같은 여성이면서 이공계(박 대통령은 전자공학과) 출신이다. 중도 우파 보수당에 속해 있어 이념 또한 비슷하다. 위기에 처한 당을 추스러 다시 살려낸 점도 닮았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현재의 위기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메르켈식의 위기타개법을 접목시겨보는 것은 어떨까.

한경환 기자

메르켈 남편이 ‘오페라의 유령’된 까닭

메르켈의 사생활은 베일에 싸여 있다. 그가 지키고자 하는 사적 영역의 중심에는 남편이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독일 최고의 양자화학자 요하임 자우어(65)가 있다. 자우어는 말했다. “대학교수이자 연구자인 나의 업무가 아니라 아내의 정치적 업무 때문에 나를 찾아오는 기자라면, 그 누구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

 1981년 베를린 과학아카데미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각각 이혼하고 함께 지내다 98년 결혼했다. 베를린 훔볼트 대학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자우어는 2005년 메르켈 총리가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올랐을 때도 “바쁘다”는 이유로 취임식에 불참했다. 지난해 4월 총리 휴가 당시에는 정부 전용기를 타지 않고 홀로 저가항공을 타고 휴가지인 이탈리아로 향해 화제가 됐다. 독일 언론들은 이런 성격과 오페라를 즐기는 취미를 빗대 자우어를 ‘오페라의 유령’으로 칭하기도 한다.

 메르켈과 자우어는 정치적인 일에 부부로서 등장하는 것을 가급적 삼가고 있다. 자우어가 의전에 따라 메르켈과 동행한 것은 2007년 독일 하일리겐담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 영향으로 대통령이 배우자와 국제적인 회의석상에 동행하던 관례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자우어가 메르켈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그러나 메르켈은 몇몇 인터뷰에서 남편과의 대화를 “거의 목숨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했고, 남편을 “정말 좋은 조언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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