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여는 여초 불교계 융화시킨 대사상가|한·중·일 「화엄 사상」 학술 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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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균여 대사 (923∼973)는 흔히 신라 향가로 우리에게 전해지는 25수 중 11수 (보현십원가)를 지은 작가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신라 의상이래 면면히 전해져온 우리 나라 화엄 교학을 다시 세운 중흥조 일 뿐 아니라 불교 연구사에 획기적 자료가 될 귀중한 저술 (10여부 65권)을 남긴 큰스님으로 다시 재평가되고 있다.
균여 대사 탄신 l055주년을 기념하여 대한 전통 불교 연구원 (원장 김지견 박사)이 28일 서울 세종 문화 회관 대회장에서 가진 국제 불교 학술 회의는 그 동안의 균여 연구의 성과를 발표하고 이를 평가받는 자리로 주목을 끌었다.
『균여 대사와 화엄 사상』을 주제로 한·중·일의 불교 석학 11명과 국내 학자 20여명이 참석, 주제 발표와 토론을 가진 이 대회는 그 동안 파묻혔던 균여의 사상가적 면모를 새롭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먼저 『균여 대사 화엄학 전서』 (전 3권)를 펴내 균여 연구의 실마리를 푼 김지견 박사는 기조 연설에서 『균여는 고려 초 후백제와 후고구려계로 양분되어 극심하게 대립했던 불교계를 화엄 사상으로 융화시킨 대사 상가』라고 밝히고 「이데올로기」로 대립되어 있는 전 인류에게 「통합」의 지혜를 줄 무한한 광맥으로서 균여 사상은 연구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균여전서』에는 불교 연구의 큰 갈래인 화엄학이 우리 나라에서 어떻게 독창적으로 소화 흡수돼 왔는가를 보여 주는 귀중한 저술이 망라돼 있는데 그중 주요한 것이 『석화엄교분기원통초』『지귀장원통초』『삼보장원통초』『십구장원통초』 등 4장.
이들은 모두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돼 있는 팔만대장경 중 나중에 보충된 보유판 (부장) 속에 포함되어 있다가 김 박사에 의해 발견돼 빚을 본 것이다.
이들 저술의 가치에 대해 각기 4명의 학자가 이날 발표를 했다. 우선 『석화엄교분기원통초』에 대해 일본 학자 「가마따·시게오」 (겸전무웅·동경대 교수) 박사는 화엄학의 가장 대표적인 강요서 (장)로 알려진 법장 (당·643∼712)의 「화엄오교장」의 주석서는 중국에 3종, 일본에 7중이 있을 뿐 한국에는 없는 것으로 지금껏 알았는데 『균여전서』를 통해 알게됐다면서 한국 화엄 교학 연구의 공백을 메워주는 유일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또 『지귀장원통초』의 가치에 대해 발표한 중국의 장만도 박사 (자유중국 문화 학원대 교수)는 「화엄지귀」는 법장이 만년에 쓴 주요 저작의 하나로 화엄경을 연구하고 써낸 법장의 저작 중 화엄의 요체를 가장 잘 꼭 집어 낸 대표적 명저라고 전제하고 균여의 『원통초』는 이러한 법장의 「아이디어」를 완벽하게 정리했을 뿐 아니라 법장 외에 지엄·청량 등 화엄종을 창시한 대사들의 중요한 관념까지도 망라해서 조화시키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특히 이 속에 북종선의 창시자인 신수의 저술 『묘리원성관』이 여러 군데 인용되어 있어 지금껏 남종선 (육조 혜능이 창시하여 선종의 주류가 됨)에 의해 매몰된 줄 알았던 북종선의 내용을 편린이나마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십구장원통초』에 대해 일본의 「기무라·기요다까」 (목촌청효·동경대 교수) 박사는 이 저술이 신라 화엄학을 화려하게 꽃피운 의상의 스승 지엄의 십구 사상을 가장 확실하게 전수 받은 균여의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밝히고 이를 통해 신라계 화엄 사상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알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날 자리를 같이한 학자들은 이처럼 국제적 불교 학자들이 관심을 표시하는 균여에 대한 연구가 뒤늦게나마 우리 학계에 소개되는 계기를 마련한데 이번 회의의 큰 뜻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방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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