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어른들도 있다는걸 처음 알았어요"-효주양이 말하는 「유괴 33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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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효주양이 겪은 유괴33일은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품을 떠난 무섭고 두려운 나날이었다. 승용차 「트렁크」속에서 새우잠을 자야했고 유괴범의 협박에 못 이겨 아빠에게 돈줄것을 애원하는 편지를 써야하는등 동심에 큰 멍이 들었다. 『어른들은 엄마 아빠처럼 모두 좋은 사람인줄 알았으나 나쁜 어른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효주양은 말한다. 효주양이 겪었던유괴 33일-.
가랑비가 내렸다.
학교에 가기 위해 나서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우의를 입고 가라고 했으나 어쩐지 입기가 싫었다.
학교에서 추석때 아빠·엄마가 예쁜 옷을 듬뿍 해준다고 약속했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는등 마음이 들떠 있었다. 무언가 장난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4시간수업을 마치고 친구 바론과 함께 추석선물 얘기를 나누면서 골목길을 내려갔을때 낮선 아저씨가 다가오며 자동차 열쇠를 잡아달라고 말했다.
열쇠를 잡아주자 아저씨는 고맙다면서 집까지 차를 태워주겠다고 말했다. 이날따라 아버지 차가 아닌 색다른 차를 타고싶은 마음이 들어 그대로 가겠다는 바론을 불러 차에 같이 탔다.
얼마가지 않아서 바론을 내리고 깜짝하는 사이에 6개월전에 아버지와 함께 서울가면서 보았던 고속도로 돈받는곳이 보여 내려야겠다고 말하자 운전사 아저씨(범인 매석환)가 『아버지가 5천만원의 빚바람에 세관에 잡혀있고 엄마는 집다락에 숨어있다』고 말해 덜컥 겁이났다.
아저씨는 아버지친구인데 너를 데리고 숨어 있으라는 아버지 부탁을 받았다면서 아저씨말을 듣지 않으면 너도 죽고 아빠·엄마도 죽는다고 말해 조용히 있었다. 이때부터 어떤일이, 있어도 아저씨가 시키는대로 해야되겠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몹시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자 아저씨가 추풍령 휴게소라고 쓰인 곳에서 차를 새우고 나서 국수와「카스텔라」를 사줘 맛있게 먹으면서 이 아저씨는 고마운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빠·엄마가 빚만 갚으면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아저씨는 냄새가 나는 담요를 주면서 자라고 했다. 아빠·엄마가 보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 잠이 들어버렸다.
잠이 깨자마자 아저씨는 높은산이 자꾸 보이는 곳으로 갔다.
큰산 밑에서 밥도 사주고「사이다」 「콜라」같은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저씨는 방에서 잠을 깨우지않고 차안에서 자라고 말하고 수첩을 꺼내더니 아버지 이름과 전화번호·아버지 직업 같은걸 물었다.
또 사람이 많이 보이는곳만 오면 네가 발각되면 모두 죽는다면서 차뒤 「트렁크」안에 숨으라고 했다.
몇 밤이 지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어느날 아저씨가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라고 말해 잔디밭에 누워 『어머니, 빨리 돈을 주고 옛날같이 잘 살아봐요』라고 쓰자 아저씨가 10월4일이라고 날짜를 가르쳐 주었다.
어머니에게 쓴 편지가 답장이 없어 울음을 터뜨리자 아저씨는 그러면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했다. 『아버지, 너무 늦게 돈을 주지 마세요』라는 내용과 놀이터 그림을 그려보냈다.
아빠답장을 기다리다 지친 어느날 아저씨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면서 너무 구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하며 다시 편지를 쓰라고 했다.
『아버지, 내가 커서 시집을 보내려면 돈이 많이 들지요』라는 내용이었다.
아저씨는 매일매일 무서운 얼굴을 지으며 이제 너를 먹이고 입힐 돈이 없어 큰일이라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런날이 며칠 지나자 어떤 만화가계에 데리고 가 아버지가 곧 나타난다고 말하면서 기다리라고 해 만화를 보고 있으니 이모와 낮모르는 사람이 몰려와 집에 가자고 말해 나는 아저씨가 아니면 누구하고도 안간다고 만화가게주인한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조금있다가 아버지가 나타나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엉엉 울었다.
아빠품에 안겨 이모집에와 잠을 자고나서 비행기를 타고 김해공항에 내리니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와 어리둥절했다.
공항에서 내려 아버지차를 타고 동래쪽을 돌아 집에 도착, 엄마품에 안겨 울었다. 집을 떠났을 때보다 엄마가 너무나 여윈것같아 몹시도 마음이 아팠다.
집에 와서 친구와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나서 왼손으로 글을 쓰는 운전사 아저씨가 비로소 유괴범인줄 알고 몹시도 부끄러웠다.
나는 모든 어른들은 아빠·엄마와 같은 좋은 사람인줄 알았으나 나쁜 어른들도 있다는것을 처음 알았다.【부산=이성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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