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 북극을 가다|"한국 극지탐험대」 ?상장정 800km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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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빙원의 고독…전진『캠프』>
거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광대무비로 펼쳐진 실원, 망원경을 들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흰눈으로 덮인 광야뿐이다. 달려도 달려도 우리가 서 있는 곳은 항상 변함없는 원의 중심이었다.
두께 1천m이상의 얼음덩이가 우리나라의 10배나 되는 넓이 2백17만5천6백평방km, 「그린란드」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니 본대가 진출한 편도 4백km의 거리는 가도가도 끝이없다는 말이 나올만 하다.

<개들이 고기 훔쳐먹어>
본대는 전체장비가 8t, 대원과 「에스키모」 가 21명, 개1백45마리 등 엄청난 물량을 가진 대부대였지만 「그린란드」의 빙원에 비하면 한줌 티끌에 지나지 않았다.
황량하기만 했던 눈벌판도 점차 익숙해졌고 개썰매의 속도도 빨라져 하루 50km는 무난히 달렸다.
「카낙」과 교신도 9월2일아침 처음으로 뚫렸다.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이광수대원의 목소리는 한국과 본대를 찾아헤매다 우리와 처음으로 하늘에서 만나게되어 감격에 목맨듯 전파를 타고 가늘게 떨렸다. 『한국 극지탐험대, 여기는「카낙」』 이대원은 이말만을 되풀이할 뿐 다음말을 잇지 못했다. 8월27일 「카낙」 을 떠나 1주일만에 겨우 대화의 길이 열린 것이다. 첫교신 성공은 이대원과 본대를 동시에 구해주었다.
본대에서는 3일까지 연락이 안 되는 경우 대원중 한두명이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것은「에스키모」들이 개식량을 무절제하게 먹인데다 개들이 밤사이 고삐를 끊고 해표·고래고기를 마구 훔쳐먹어 개식량이 부족해졌고 「모례인」 지대에서 「무비」촬영기재가 부서져 이들에 대한 보충이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본대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고 개식량 lt과 보도기재·보충장비등을 요청했다.
「헬」기는 다음날 하오3시30분 약속시간보다 5분늦게 개식량 7백80kg과 「무비·카메라」, 그리고 「에스키모」들이 요청한 수선도구등을 싣고 날아왔다. 「필름」 봉투를 전달하면서 조종사에게 물으니 「카낙」에서 이곳까지는 직선거리로 72km, 35분이 걸렸으며 우리가 알려준 좌표를 「헬」기에 부착된 「컴퓨터」로 계산, 그대로 따라왔다고 한다. 항법의 정확성이 입증된 셈이다.

<개식량달려 헬기로 날라>
하오 9시40분 「텐트」를 치는데 바람이 거세게 불어 「프레임」 1개가 부러졌다. 밤새도록 바람이 「텐트」 를 요란하게 흔들어 펄럭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
취사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코헤르」 에 얼음을 깨넣어 물을 끓인후 건조쌀로 밥을 짓는 것이 고작, 식기나 수저를 씻지않고 사용한지가 오래다. 무진장한 얼음이지만 해발 1천5백m의 고지에서는 얼음을 녹이는데만 30, 40분이 걸렸다. 양치·세수는 물론 손발을 씻을 엄두도 나지 않는다. 대원들은 새까맣게 그을은 얼굴에 수염이 멋대로 자라 말 그대로 극지남의 모습이다.
4일은 다른날보다 3시간이나 일찍 출발, 상오11시에 첫썰매가 움직였다. 바람은 더욱 세어져 순간 최대풍속이 초속 14m를 기록, 실원에 깔린 눈이 썰매위로 날아든다. 기온은 영하19도. 「크리배스」의 위험도 사라지고 진로는 더욱 평탄하여 고도계는 해발1천4백70m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두터운 방한복에 털모자·이중장갑·「가빈」등으로 완전무장한 대원들은 썰매위에서 개를 모는 채찍소리와 「에스키모」 들의 외침, 썰매가 눈위를 미끄러져 나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수면부족을 새우잠으로 달래기도 했으나 굴러 떨어지기 일쑤였다.

<썰매위서 수면부족 달래>
「그린란드」의 내륙빙하는 8월하순에 이미 겨울로 접어들어 「크리배스」의 형성도 중지되었고 태양도 개썰매를 감돌듯 낮게 떠 빙원에 긴 여운을 남기며 놀을 만들다가는 하오11시쯤이면 완전히 빙원 아래로 사라졌다.
은백의 설원이 낙조에 물들때면 하늘에서 주홍빛의 「커튼」 이 내려지듯 황홀한 환상의 세계로 바뀌었다. 바람을 타고 일어나는 눈보라도 분홍빛의 불꽃이 타오르는 듯 했다. 썰매도, 「에스키모」도, 개들도, 대원의 얼굴도, 그리고 「텐트」 속까지도 온통 붉은물이 들어 실원에서 취사준비를 하고 개식량을 자르는 모습은 푸근함과 고요함, 그리고 나른한 피곤 속에서도 충만한 만족감이 감싸고 있었다.
4일 도착한 곳의 좌표는 북위78도35분, 서경64도5분으로 하루53km를 진출. 5일 도달예정인 「베이스·캠프」까지는 70km, 목표지점인 북위 80도까지는 1백80km가 남았다.
5일 상오11시30분에 출발, 10km쯤 전진했을때 개썰매줄을 고쳐매던 「에스키모·리더」「토마스」가 개들이 갑자기 달아나는 바람에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줄사이에 걸려 끝마디가 잘려나가는 부상을 입었다.
응급치료를 했지만 피를 많이 흘린 손가락은 이내 동상에 걸려 퉁퉁 부어올랐다. 피부가 찢겨지고 속살이 엉겨버린 상처는 보는 사람들이 안스러울만큼 심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은듯 그대로 개썰매를 몰았다. 무지라기 보다는 전체대원들의 사기를 염려해서였으리라.

<얼음구덩이 파 간역창고>
하오7시쯤 행동을 멈추고 전진대를 보내는 준비를 하기위해 막영을 서둘렀다.
본대와 「에스키모」 의 「멘트」 가 9개. 높이 7·5m, 4m짜리「안테나」2개를 한가운데 세우고 개들은 막영지를 둘러싼 원형으로 분산시켜 묶어두었다. 얼음집을 만들어 간이창고도 마련하고 장비와 식량상자들을 쌓아 두었다.
「안테나」기둥에도 태극기와 「덴마크」국기, 그리고 길이 4m의 대형 천하대장군 깃발을 매달아 「베이스·캠프」의 면모를 갖추었다. 북위79도3분, 서경62도2분5초, 표고 1천2백40m에 설치된 전진본부는 사방 어느쪽으로도 3백km 이내에는 인적이 없는 얼음의 바다로 둘러싸인 절해의 고도나 다름없었다.

<홍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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