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의 국어 생활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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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휴일인 한글날을 또 맞는다. 우리 민족의 고유 언어인 한글이 창제·반포 된지 5백32돌 째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제정, 반포하신 뜻은 우리 고유의 글자를 만들어 일용에 변하게 함으로써 우리 겨레의 얼과 슬기를 더욱 빛내고, 우리의 찬란한 문화 전통을 주체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함에 있었다.
문화 전통의 주체적 발전이란 자주정신의 함양에 뿌리를 두고 애국 애족의 정신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독립 국가의 수립과 함께 「한글날」을 정하고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을 세계에 자랑함과 함께 국어 생활의 순화를 다짐하는 날로 삼아 왔다.
아마도 국어 제정일을 하나의 국경일로 정하고 기념식을 거행하는 나라는 전세계를 통틀어도 우리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 만큼 우리는 자랑스런 언어를 가진 단일민족이며 자주 국민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글날은 한낱 현실적인 기념식이나 열고 또 하나의 행락의 공휴일로 밖에 여기지 않는 풍조가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뛰어난 한글이 있어도 지금 우리의 일상적인 국어 생활은 날로 난맥을 더해 가고 있을 뿐 아니라 한글 자체도 일부 완고한 학자의 주장 때문에 날로 어렵고 복잡한 형태로만 전락해 가고 있는 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바른말·고운말을 쓰자는 국어 순화 운동을 벌인지도 오래되나, 정부·민간 할 것 없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 당면한 부르짖음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도리어 날로 생소한 인조어들과 비어·속어, 게다가 소화 안된 외국어 등의 공해 속에서 시달리고 있다.
더군다나 「텔레비전」 등에 자주 등장하는 왜곡된 지방 사투리는 왜 그렇게 심한지 이것 또한 큰 문제라 아니 할 수 없다.
모든 계층의 국민 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텔레비전」 연속극 속의 사투리 홍수는 취학전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서 표준어를 배우기 전부터 몸에 익히는 생활 용어라는 데서 그 문제성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이런 일상생활 속에서의 습관적 언어 공해로는 국어 순화 운동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적어도 학교에서 표준어를 배운 사람들은 되도록 표준어 쓰기에 노력하고, 또 가정교육에서도 어린이들의 언어 습관에 신경을 써야 할 의무가 있다.
세계 어느 나라나 학교교육의 교과과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국어 과목이다. 그래서 의무교육인 국민교·중학교 교과과정의 3분의 2는 국어교육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은 국어교육이 3분의 1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그리고 그나마 우리의 전통 문화를 이해하는데 불가결한 한자 교육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치명적인 잘못이다.
지난번 외래어 표기법의 통일안이 문교부 국어 심의회에서 채택, 결정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국어순화의 길은 곧 국민 정신 순화의 길이다. 하루가 달라지는 물질 성장의 현 사회에서 언어의 변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바른 우리의 낱말이 없을 때 외국어에 우리 언어 영토는 빼앗기고 만다.
일본 등에서의 외국어 공해를 우리는 너무도 잘안다. 외국어에 빼앗긴 언어의 영토를 되찾고, 다시는 안 뺏기도록 학자·문학가·언론인 등이 우리말을 연구 개발하고 국민 모두가 이를 지켜 나갈 결의가 필요하다.
급속한 경제적·사회적 발전에 맞추어 한글 사용의 기계화 등 보다 편리한 전달 수단도 빨리 연구 개발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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