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복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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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노령과 행복을 한사람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얼마나 드문 일인가.」 기원초 「로마」의 철인「세네카」는 한숨지었다. 회갑을 겨우 넘긴, 길지도 않은 생애를 산 그였다.
『노령은 얼굴보다 마음에 더 많은 주름살을 심는다.』
16세기 「프랑스」철인 「몽테뉴」가 그의 『수상록』속에 남긴 말이다. 예나 이제나 노인의 우울은 변함이 없다. 「다윗」왕과 「솔로몬」왕은 이세상의 모든 영화를 독점한 사람같았다. 그는 즐겁고 즐거운 생활을 했었다. 그의 주변에는 황금과 권력과 많은 아내들이 하루도 떠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노년에 접어들자 그는 많고 많은 자책과 함께 두가지 글을 남겼다. 「솔로몬」왕은 『잠언(잠언)』을, 「다윗」왕은 『시편』을. 그들도 역시 우울했던가보다.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노인의 우울만이 아니다. 공자는 벌써 기원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요즘은 부모에게 물질로써 봉양함을 효도라 하는구나. 견마도 집 두고 먹이거늘, 공경하는 마음이 마르지 않으면 무엇이 다르랴.』
어디 이말이 기원전 5세기의 말같은가. 정말 지금의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찌르기는 마찬가지다. 공자는 계속 충고했다.
『부모의 나이는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오래 사신 것을 기뻐하고, 또 한편으로는 연세 많은 것을 걱정해야한다.』
여기에 정말 시공을 초월하는 자연의 법칙이 있다. 어버이에 대한 공경이 그것이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같은 은덕을 어디다가 갚사오리.』
정철(조선왕조시대의 시인)의 노래다.
요즘의 세태는 다시금 바뀌어 어버이의 공경이 「도리」이기 보다는 「책임」처럼 되어버렸다. 어느 자손이 모실 것인가가 세인의 화제가 되고, 노인의 사회복지시설부재를 탓하는 소리도 드높다.
두가지는 옳은 생각이다. 어버이를 꼭 누가 모셔야 한다는 관습에 얽매이는 것은 공연한 고집이다. 우리 사회도 또한 가족제도의 변화에 맞추어 노인의 복지시설에 성의있는 정책을세워야할 것이다. 하다 못해 마을마다 노인들이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경로당이라도 세워야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책임」이나 「시설」에 앞서 공경하는 마음의 자세이다. 노인을 무슨 부담으로 생각하는 것부터가 세속의 비정을 느끼게 한다. 도덕의 내면을 무슨 기율의 조목처럼 따를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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