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속의 한국인<1>철근공 천봉렬씨의 하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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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동은 「세계의 노동시장」이다. 73년이래 석유부국으로 등장한 중동 각국에 개발「붐」이 일었다. 여기에 한국기술인력도 진출, 뜨거운 사막의 건설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테헤란」주재 본사 조동국 통신원<사진>은 이 한국인 근로자들의 노동현장을 찾고 아울러 중동 각국 교민생활 모습을 종합 취재했다.
【편집자주】
천봉렬씨(45·부산시 부산진구 전포3동방)는 76년11월 해외라곤 「이란」이 처음인 철근공이다.
처음 20개월 동안은 서남부 「이란」의 동광건설현장인 「사·체스메」에서 일했다. 지금은 「테헤란」 동북쪽으로 옮겨 「핀란드」 건설업자가 맡아 짓고 있는 국왕경호대원 「아파트」공사장에서 1개월 반 째 근무하고 있다.
섭씨 40도를 넘는 8월 하순 「플래스틱·헬밋」 을 쓴 구리빛 피부의 천씨는 『월 35만원 이상씩 송금하는 재미에 고달픔도 잊으며 외국인들로부터 한국근로자들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어 자랑스럽다』고 웃어 보였다.
「이란」에 오기 전엔 부산에서 육교·시추선·안동 「댐」건설공사에 철구반원으로 일했다. 그는 한달에 6만∼8만원을 받았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일자리는 고달픈 이국생활이지만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는 부산에 부인과 2남1녀를 남겨두고 왔다. 애들 교육비가 적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약8백만원을 송금했으니까 6백만원쯤은 저축했을 거라면서 밝은 앞날을 꿈꾸고 있었다.
가족과 떨어져 괴롭기는 하지만 여건이 허락되면 몇 년 더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고도 했다.
가족들이 지금 80만원짜리 전셋방에 살고 있으니까 내집을 장만하자면 아무래도 1, 2년 더 이곳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요즘 하루가 다르게 치솟기만하는 한국의 물가고가 그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그가 맡은 일은 건축물의 기초공사다.
그러나 현지인이 한 것과 한국인들이 한 작업과는 겉으로 봐도 큰 차이가 난다면서 천씨는 주위의 작업현장을 대조해 보였다.
「사·체스메」 동광산개발건설공사도 처음 현지인들이 20∼30%만 해놓고 못한다고 손뗀 것을 한국인 근로자들이 맡아 지금은 90%이상을 진척,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천씨 등 한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핀란드」인 기술진들은 한국인 근로자들의 성실성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인들은 일에 열심이고 성품이 좋아 앞으로도 더 많은 한국인 근로자를 쓰겠다고도 했다.
「수티넨」 건설소장은 『한국 근로자들이 영어가 짧고 신참자들의 숙련도 부족 등 문젯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 같은 곤란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근면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인 근로자들이 모두 2∼3개 직종의 기능을 한몸에 지녔다고 지적하면서 한국인 근로자들은 필요에 따라 자기 직종이 아닌 일도 무엇이든지 거뜬히 해낼 수 있는 「만능기능인」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인 현장소장인 고한류씨(46)는 「핀란드」신문에 한국근로자 칭찬기사가 실린 일이 있으며 최근엔 이웃나라 건설공사에도 한국인 2백명을 쓰고 싶다는 제의가 왔다고 했다.
천씨와 함께 현장에 있던 허원용씨 (32·충남 유성읍 구암리310)와 지수영씨(36·경기도 문산읍)도 모두 『「이란」은 특히 신체의 약점이 잘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에 건강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오지 말아야 한다』며 한국에서 오는 편지 몇 줄에 1주일동안의 피로를 말끔히 풀 수 있다는 사실을 가족과 친지들이 알아줬으면 했다.
한국인 숙소는 일에 지친 근로자들이 삶의 맛을 호흡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공사현장에서 차로 10분쯤이면 닿는 한국인 숙소는 천씨나 동료들에겐 말 그대로 「안식처」임에 틀림없다. 숙소에선 1백% 한식 「메뉴」에 따른 식사가 제공되며 탁구대 둘, 세탁기 2대가 홀아비 살림을 도와준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벽에는 맥주·「콜라」·우표·편지지 등을 공급한다는 PX안내문이 붙어 일터에서 돌아오는 근로자들을 고향의 가족대신 마중한다.
【테헤란=조동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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