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년들의 우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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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3「될대로 되라』는 노래가 있었다. l950년대의 세계를 풍미했던 「도리스·데이」의 노래.
10대 소녀가 호기심에 찬 얼굴을 하고 어머니에게 묻는다. 『나는 이담에 자라면 무엇이 될까요.』 어머니는 대답해 준다. 『이다음 일을 어찌 알겠니!케·세라·세라.』
전쟁이 끝나고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가 성난 젊은이로 탈바꿈을 할 무렵 세계의 미래상은 회색빛으로만 보였다. 인류를 전위시킬지도 모를 핵무기의 개발, 사상의 혼돈, 「모럴」공백, 난폭한 속도로 앞질러 가는 문명의 회오리….
『될대로 되라』는 심리는 그런 상황 속에서의 허탈과 초조를 나타내 보인 것도 같다.
1966년 3월, 미국의 주간지 「뉴스위크」는 그 나라 10대 소년들에게 그들의 소망을 물어본 일이 있었다.
『좀더 부유하게, 좀더 행복하게, 좀더 건강하게, 그리고 유명해 지는 것』-.
「허탈」이나 「초조」의 모습은 이제 사라지고 있는 인상이다. 그보다는 소시민이 되는 달콤한 꿈에 「유명」이란 야망이 양념처럼 채색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이 존경하는 인물은 어딘지 「모럴」의식이 강하게 배어 있었다. 「J·F·케네디」 「링컨」 「워싱턴」 등이 바로 그런 진취적 「모럴」의 표상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이상일 뿐 현실은 아니다. 미국의 아이들은 「엘비스·프레슬리」 「베이브·루드」(홈런왕)에 열망과 환호를 보내고 있다. 이것은 현대문명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오늘의 우상은 의사당의 연단이나, 위엄 있는 의자나, 포연 속의 전장에서는 결코 탄생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브라운」관의 명멸 속에서, 혹은 운동강의 환호 속에서 우상들이 미소짓고 있다. 우상의 조건은 「모럴」이나 권위가 아니다. 「포퓰러리티」, 바로 그것으로 바뀌었다. 대중시대의 총아는 마음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눈과 입과 귀의 주인공인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10대 소년들에게 그들의 우상을 물어본 「앙케트」의 응답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축구선수·야구「피처」·TV의 MC (사회자), 그리고 인기작가·만화가·가수 등이었다. 이들은 거의 모두 「브라운」관 속의 인기인들이며 광고의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다. 우상의 「메이커」가 누구인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오늘의 어린 세대들은 입지전적 인물이나 성인들을 존경은 할지언정 선망하지는 않는 것 같다.
정말 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어머니도 대답할 길이 없을 것만 같다. 「케·세라·세라」가 다시 유행하는 시대가 된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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