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제자-김동익>-(제59화)함춘원 시절-김소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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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와이」내과 시절>
요즈음은 어찌된 셈인지 의사가 불신의 표정이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리고 의사에 대한사람들의 존경심이 조금은 약해진 느낌 이다.
안타까운 심경 금할 수 없다. 젊음을 환자들과 함께 보냈던 함춘원 시절을 되들아 볼 때 더욱 그렇다.
당시 한자들의 의사에 대한 태도는 신뢰와 존경 바로 그것이었다.
그 만큼 우리 의사들도 성심껏 최선을 다해서 환자를 돌보았다고 자부한다.
나는 경의전을 졸업한 24년부터 어쩔 도리 없이 개업 할 수밖에 없었던 35년까지 11년간 조선총독부의원(28년에 경성 제국대학 병원이 됨)「이와이」내과에서 환자진료와 연구생활을 했는데 이 11년은 나의 인생을 통해 가장 의욕적이고 희망적인 기간이었다. 환자는 나의 전부였다.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퇴원하는 환자들은 나의 젊은 가슴을·얼마나 기쁨과 보람으로 충만하게 했었던가!
그리고 밤늦도록 연구실에서 연구와 실험에 열중케 한 그 의욕과 정열.
지금 새삼 그때의 흥분을 감지하면서 밤 12시가 넘는 줄도 모르고 실험용 토끼와 개와 씨름하던 동료들의 진지한 얼굴들이 떠오른다.
임명재, 박종선, 김용필, 유석균과 일본인「요시무라」(길 촌장),「나까무라」(중촌해일)등이다. 모두 고인이 되었는데「나까무라」씨는 1964년 나의 아내와 같이 세계일주 여행을 하는 도중 일본에 들렀을 때「이와이」내과 출신들을 모아 열렬하게 나를 환영해주었었다.
그는 원래 동 대를 졸업한 준재였는데「이와이」교수를 흠모한 나머지 우리 나라에와「이 와이」내과에서 연구생활을 한 것이다.
당시 조선총독부의원 내과는 3개가 있었다.
제1내과가「이와이」(암정)이고, 제2내과는「이또오」 (이등정의) , 재3내과는「시노자끼」(유기)다.
이 가운데「이와이」내과가 가장 유명했고 인기가 있었는데 재계와 관계 거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한국인은「이와이」내과를 좋아했다. 임명재선배가 개업하느라고 우리 교실을 떠난 뒤에는 주로 내가 한국인 입원환자들의 주치의가 되었다.
「이와이」교수의 교육방식은 무척이나 까다롭고 엄격한 것이었다.
처음 교실에 들어간 1년 동안은 완전히 도제생활을 시켰다.
바로 윗 선배 ((Hauft)를 따라 다니면서 시중들게 하는 그야말로 부수(Neben이라고 불렀다)로서 1년간 수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달픈「네벤」(부수·현재「인턴」과 비슷하다) 생활 끝에 1925년7윌 조선 의학 회 잡지56호에『혈구심장속도의 본 태에 관한 연구』라는 내 생애 첫 논문이 게재되었을 때 내가 얼마나 환호작약했겠는가.
그리고 32년10월15일 기어이 대망의 의학박사학위를 획득했다.
논문 제목은『임상적 간 기능검사』. 일본 경응의세 대학에서였다.
11년간「이와이」내가 교실생활을 통해 발표 된 논문은 모두18편에 달한다. 가장 열정적이고 의욕적인 시절에 거둔 결실이기 때문에 이 논문들에 대한 나의 애착은 지금도 여전하다.
한편 내년에 경성의학전문학교에서 경성제국대학의학부로 탈바꿈 한 뒤 제1회 졸업생(12명)이 1930년에 배출되었는데 그중 함원영씨가 우리 내과에 들어왔다.
그리고 제2회 졸업생 가운데 유석균씨가, 제3회는 임영유씨. 제4회는 오현관씨와 김지배씨가「이와이」내과에 들어와 나와함께 연구생활을 했다.
현재 부산동래에서 임 내과를 개업하고 있는 임영식씨는 국제「로터리」지구 총재를 지낸 바 있어 전에 지구총재였던 나와는 더욱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또 지금 광주에 있는 조선대의대 내과 교수로서 연구와 교육에 여념이 없는 오현관씨와 서울 여의도에서 내과를 개업중인 김근배씨(전 서울시의사회장·대한내과학회회장) 와는 이따금 만나서 옛날「이와이」내과 생활을 회고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역시 그때 의사가 행복했다는데 우리들의 의견은 완전히 일치한다.
사실 28년4월내가 성대조수 박령을 받으면서 받은 월급은 기껏 60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60원이라면 두 사람이 겨우 한달 생활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도 의사로서 행복과 보람을 느낀 것은 환자로부터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었지 않나 생각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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