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에 이색 현상|여성문제 서적이 잘 팔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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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오늘의 여성문제는 무엇인가-. 하는 주제를 내건 서적들이 최근 상당한·인기를 끌면서 계속 출간, 주목을 끌고 있다. 60년대 말 구미에서 불기 시작한 여성해방운동의 도화제가 됐던 몇몇 외국저서들이 지난 4, 5년 사이 국내에서 번역, 출판되면서 커다란 인기를 끌어왔는데 여기에 잇달아 한국여성문제를 파헤치는 국내 학자들의 저서가 최근 출판돼 이제 한국에서도 본격적인「여성문제」의 이론이 제기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 평민사에서 이대 이효재 교수의 『여성의 사회의식』과 김행자 교수의『인격의 자유화롤 위한 서장』이 동시에 출간, 세계여성문체를 해설하는데서 더 나아가 오늘의 한국여성의 위치와 문제를 파헤치는「한국의 여성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주로 대학출판사나 여성단체에서「전문서적」으로 출간되던 것과는 또 다른 의미로, 한국에서의 여성문제가 일반화하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또한 지난75년「여성의 해」이후 국내에서 번역소개 된 갓 가지 여성문제서적들이 그 동안「베스트셀러」로서 한국여성들에게 소개됐었기 때문에 출판사들이 여기에 눈을 돌린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세계 여성해방운동의 교과서처럼 돼왔던「프랑스」의「시몬·드·보와르」여사의『재2의 생』(49년 원작·52년 영역)이 한국에서 완역 소개된 것은73년(조홍직역·을유 문화사 간). 지금까지 5판을 찍어낼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그전부터 이를 발췌 소개한 단행본들도 2, 3종 나와 현재 많은 여성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와 함께 70년대 여성운동의 명쾌한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되는 미국「케이트·밀례트」의『생의 정치학』이 국내에 완역소개 (76년 발행·정의숙 조정호 공역·현대사상사 간)돼 이것도「베스트셀러」로 재판됐었다. 그리고 지난5월에 나온「베티·프리단」의 『여성의 신비』(김행자역·평민사 간)는 벌써부터 화제에 오르고 있다. 여성해방운동의 이 이론적인 명저들이 의외로 국내출판계에서 인기를 계속하는 뒷면에는 이와 관계되는 모험여성들의 전기와 소설들이 커다란 뒷받침을 하고있다.
지난76년에 출간, 현재13판을 찍어내고 있는「시몬·드·보브와르」의 소설『위기의 여자』(오증자 역·정자사 간)를 비롯, 77년에 나온「루·살로메」의 일대기『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H·F·패터스」저· 김성겸 역· 청년사 간)는 1년도 못돼 22판 7만여권이 팔렸고 금년 봄 두 군데 출판사에서 나온「이사도라, 덩컨」의 자숙전『이사도라, 이사도라』(모음사 간) 와『맨발의 이사도라』(모음사간)는 두 권 다 5, 6판을 찍어내 총4만여권이 팔리는 등 하나같이「여성문제」가 장기「베스트셀러」로 화제에 오르고있다. 이들 외국저서는 현대여성, 특히 중산층 여성들의 심리적 갈등을 파헤치고 아울러 그 반작용으로 역사상「여성」이라는 신화적 굴레를 용감히 파괴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대부분. 『위기의 여자』는 40대 정숙한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겪는 의로운 여성의 의미를 깨우쳐주고, 『이사도라』나『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는 남성의 예속으로부터 해방 된 뛰어난 여성들의 투쟁의 발자취-. 과연 여성은 어떻게 대접받고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책들이다.
이 책들은 모두 세계여성운동의「선구자」로 최근 구미에서도「리바이벌·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들인데 한국에서의「베스트셀러」현장에 대해『여성들의「의식」이 깊어져가고 있는 결과』 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따라서 한국여성문제를 파헤치는 저서들도 앞으로 계속 출간 될 예정, 몇몇 출판만사에서는 장기계획을 새우고 있다.
평민사에서는 앞의 이효재·김행자 교수의 저서 외에「여성총서」의 형식으로 올해 안에 10여권의 국내의 여성관계 서적을 출판할 계획이며 정우사에서도『위기의 여자』에 이어 「시몬·드·보브와르」의 여성문제모음『여성론』과 이효재 교수의『여성과 사회』를 곧 출간할 예정이며 본격적인 여성관계 교양 「시리즈」도 장기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지금까지 출판계에서 단순히「여성취향」「여성 물」로 지칭됐던 달콤하고 가볍고 감상적인 책들에서 한 걸음 달리 여성독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의식하는 문제서적들로 눈을 돌린다는 것을 나타낸다.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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