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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되고싶은 마초의 분투 나도 차승원도 독하게 찍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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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영화 ‘하이힐’의 지욱(차승원)은 우산을 든 채 한 손으로 악당들을 때려눕히는 강력계 형사지만, 내면의 여성성 때문에 괴로워하다 여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사진 롯데 엔터테인먼트]
장진 감독

충무로의 ‘입담꾼’ 장진(43) 감독이 도발적인 영화 ‘하이힐’(6월 4일 개봉)로 돌아왔다. ‘로맨틱 헤븐’(2011) 이후 3년 만이다. 주인공은 내면의 여성성을 억누를 수 없어 고민하는 강력계 형사 지욱(차승원)이다. 여자가 되기로 결심한 그를, 그의 남성적 매력에 빠져있는 조폭 2인자 허곤(오정세)이 막아선다. 장 감독은 트랜스젠더(육체적 성과 정신적 성이 다른 사람)라는 낯선 소재와 액션 누아르 장르 사이에서 노련한 줄타기 솜씨를 보여줬다. 그는 “약이 바짝 오른 상태에서 만든 영화”라고 했다.

 -영화에서 감독과 배우의 독기가 느껴진다.

 “차승원과의 세 번째 영화다. 차승원은 드라마·광고와 달리 영화에선 뚜렷한 성과가 없다. 나 역시 매너리즘에 빠져 재능의 한계에 답답해하고 있었다. 둘 다 이대론 안 되겠다, 치열하게 붙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차승원은 정말 독했다. 액션신을 찍으며 ‘한번 더’ ‘다시요’를 입에 달고 살았다.”

 -트랜스젠더는 무척 파격적인 소재다.

 “성 소수자를 통해 세상의 보편적 기준이란 게 갖는 폭력성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었다. 어떤 경향이 소수라는 이유로 열외 취급받는 게 싫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나와 다를 뿐, 나의 적은 아니다.”

 -트랜스젠더를 실제 만났나.

 “트랜스젠더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들이 출연도 해줬다. 대부분 동성애 경험을 통해 트랜스젠더가 된다는 그들의 지적에 따라 지욱의 소년 시절 동성애 경험을 회상 장면으로 넣었다.”

 -액션에 무얼 담으려 했나.

 “지욱은 영화가 만들어낸, 완벽한 마초다. 완력에 대한 로망이 있는 사람들이 그를 동경하길 바라며 액션신을 찍었다. 만화적 상상력도 가미했다.”

 -자기 안의 여성성을 발견한 적이 있나.

 “고교 때 한국무용을 해서 여성적인 몸짓이 나올 때가 있다. 작가만 했다면 여성적 감수성이 더 발현됐겠지만, 연출까지 하면서 마초 기질을 갖게 됐다.”

 -특유의 유머코드가 번뜩이는 부분들이 있다.

 “지욱이 해병대 선배인 트랜스젠더 마담에게 ‘필승’이라고 경례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규칙에 대한 배반에서 희열을 느끼는 거다. 누아르 장르지만 깜짝 선물로 유머 코드를 남겨놓았다.”

 -한 때 영화감독을 그만두려 하지 않았나.

 “흥행 감독이 아니라는 이유로 퇴출 되느니, 내 발로 나가자는 생각을 하던 지난해 초 ‘포레스트 검프’ 등을 만든 로버트 저메키스(62)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그가 ‘난 내가 65세가 됐을 때 만들 영화가 너무 궁금하다’라고 하더라. 그 말에 스스로 반성했다. 65세 때도 젊은이들이 킥킥대는, 장진스러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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