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고장」서 주목받은-「파리」 한국 현대 회화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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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유럽」 순회중 「파리」의 「세르니시」 미술관에서 지난 4월27일부터 6월25일까지 약 2개월 동안 열렸던 한국 현대 회화전은 미술의 고장인 「프랑스」에 처음으로 우리 나라의 대가들 작품이 동시에 선보였다는 점에서 큰 뜻이 있었다. 이 전시회는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의 산수화, 김기창 화백의 화려한 풍속적인 그림, 그리고 서세옥의 추상적인 묵화들은 동양화라 일컬어지는 한국 전통 미술의 현대적 전모를 집약함으로써 서양인들로 하여금 동양 문화의 진미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천경자의 화려한 채색 그림들은 「파리」의 미술 평론가들이 한결 같이 외면해버려 이번 회화전은 호·악의 평을 받은 셈이 되었다.
「르·피가로」지는 『이 작품들이 정말 현대 한국 미술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전통주의와 회고적 측면에서 우리는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 미술의 정교성이나 시적 감동을 발견하지 못한다. 풍경화는 나무들이 뻣뻣이 선산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에스프리」 (정신)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천경자씨의 그림들에 대해 서양으로 눈을 돌린 경향임을 지적하면서 채색에 기교를 보인 작가이지만 『초상화들과 나체화들을 잊어버리자』고 평가.
「토뉘스」지도 굉장히 정교한 채색에 감동했지만 「샤갈」과 「고갱」의 그림들에서 발상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천씨의 그림은 일반적으로 흔히 서양인들에게 눈익은 경향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호평을 받지 못한 것 같다.
「르·피가로」지는 서세옥씨의 그림들에 희망을 걸었다. 『그의 「유머」와 자유로운 「터치」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구상과 추상의 가운데서 그는 비 (우)와 춤과 눈 (설)을 커다란 백지위에 떠올린다.
이를 위해서 먹으로부터 튀는 기름기 있는 물감들, 붓의 솜털 같은 「터치」와 점과 「사인」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재료들인가! 우리는 그의 그림으로 인해 약간이나마 명랑하게 이 전시회를 떠나게 된다』고 결론지었다. 「르·몽드」지는 청전의 그림들을 높이 평가했다. 『그의 화법의 독특한 「터치」가 자아내는 진동감은 기다란 화폭들이 활기를 일으킨다. 마치 서양의 인상파처럼 처리된 「포플러」 나무들의 행렬들…제1열에는 은빛 강물이 흐르며 하얀 오솔길은 도처에 꿰뚫으면서 스쳐 나타난 광선 속의 구릉처럼 잠겨 있다. 풍경을 완벽하게 성공시킨 하나의 기법이다』라고 청전의 그림만을 극찬했다.
원래 비평이란 평자의 시점과 철학에 따라 엇갈릴 수 있지만 「르·몽드」와 「르·피가로」에서 나타난 중요한 시점은 서양적인 것보다는 동양적인 것이 유리하다는 교훈을 보여 준다.
한국인을 경제 동물인 제2의 일본인으로 보기 시작한 「프랑스」 등 서구에 전통 문화의 한면을 인식시킨 계기로서 이번 한국 현대 회화전은 그만큼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파리=주섭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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