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의 교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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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길주 명태」 얘기가 있었다. 함북 앞 바다의 어장에서 남한의 고깃배와 기술로 명태를 잡아 그 어획물을 함께 분배하자는 이를테면 「로맨틱」한 착상이다. 그럴 경우 남북한은 합자를 하게 되는 셈이다.
좀더 현실적인 생각도 있을 수 있다. 북한의 광석과 우리의 갖가지 전자 제품이나 농산물을 맞바꾸는 일.
꿈같은 얘기지만 하기로 치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서로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비싸게 사들일 것이 아니라 차라리 같은 땅의 이웃에서 수월하게 주고받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발 더 발전시킬 수도 있다. 교역한 물건을 피차가 군사 목적을 위해 사용하지 말기로 약속하는 일이다.
문제는 그런 발상이 「정치의 이념」이라는 매정한 벽에 부딪쳐 한낱 공상에 그치고 마는데 있다.
더구나 그 상대가 이 지구상에선 가장 괴팍스러운 북한일 때 그런 「로맨스」는 결국 환상에 그치고 말 공산이 크다.
하지만 동·서독의 경우는 이 꿈같은 일들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벌써 1951년 동·서독은 「베를린」 협정에 기초를 두고 서독 연방 은행과 동독 국립 은행이 청산 거래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들의 무역은 「동족의 입장」을 존중해 외국과의 통상적인 무역과는 달리 「역내 거래」로 취급할 수 있도록 했다.
l972년11월에 맺어진 양독의 기본 조약에서도 역시 그 정신을 그대로 계승했다.
서독은 EC 역외 농산물에 대한 과징금이나 EC 관세의 적용을 벗어나 동독에 대해 세제상의 특혜 조치까지 취하고 있다. 이들 두 독일은 무역 청산에서 발생하는 상호 초과 허용량 (스윙)을 8억5천만「마르크」 (DM)나 책정해 놓았다.
75년의 무역액은 총 규모가 73억「마르크」 (DM)에 달하고 있다. 서독은 동독으로부터 34억「마르크」의 상품을 사들였다. 동독은 서독으로부터 39억 「마르크」를 수입했다.
서독의 경우는 워낙 무역 규모가 엄청나 대동독 수출입이 차지하는 몫이 고작 l·7% 안팎이다. 그러나 동독의 경우는 서독에 등을 기대다시피 하고 있다.
서독에의 수출량은 총 수출고의 절반에 가까운 48·6%에 달한다. 더구나 이들의 무역 규모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75년의 경우는 전년 대비 21%의 증가를 보여주었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그런 일을 해보자는 제의가 박 대통령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젠 북에서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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