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커진 경제 감당할 우수 인재 확보에 주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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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법시험과 행정·외무·기술고등고시의 시험과목과 시험방법에 대한 개선 필요론이 대두되어 시험을 주관하는 총무처가 개편작업을 벌이고 있다.
총무처는 지난해 말 전국대학교수 44명을 상대로 『고시과목 조정에 관한 앙케트』를 실시, 응답자의 대부분으로부터 「시대에 맞는 과목」으로 재조정해 달라는 건의를 받고 본격작업에 착수했다.
법관과 검찰관의 등용문으로 실시하는 사법시험은 그런 대로 권위와 수준을 지속해 왔으나 행정공무원을 뽑기 위한 각종 고시는 경제의 급성장 과정에서 다소 인기를 잃었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분석이다. 우수한 인재가 실업 쪽으로 빠져나간다는 판단인 것 같다.
정부의 행정고시 모집 정원과 합격자 수의 추세를 보면 64년엔 30명 모집에 24명이 합격했던 것이 70년엔 70명 모집에 27명, 74년엔 1백 명 모집에 47명, 76년엔 1백50명 모집에 73명밖에 합격자가 나오지 않아 이런 현상을 두고 질의 저하로 평가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래서 정부당국은 우수인력의 확보 책으로 고시의 개선방안을 검토하기에 이르렀고 사법시험의 일부 과목조정도 꾀하게 된 것이다.
법조인과 고시출신의 고위공무원·대학교수들도 대부분 시험과목의 조정에 찬성하고 있다.
양준모 변협회장은 『법조인의 지식이 빠른 템포의 경제발전에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고 지적, 이에 맞는 소양과목이 조정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문상익 대검 총무부장은 『고시의 일차적 의의가 기본재질과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이므로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개발에 중점을 두어야한다』면서 구체적으로 국어 과목 같은 것을 선택으로 넣을 수 있다고 예시했다. 이수성 교수(서울대·형법)도 과목조정에 찬의를 표했다.
지금 실시하고 있는 시험과목은 ▲사법시험=1, 2차 각각 8개 과목인데 1차에선 헌법·민법·형법·경제학개론·문화사 등 5과목이 필수이고 선택 과목은 국제법에서부터 정치학까지의 8개중 2과목과 외국어 1과목으로 되어있다. 2차 시험에서는 국사·헌법·행정법·상법·민법·민사소송법·형법·행정소송법 등 8과목이 모두 필수.
▲행정 고등고시=1차 시험에 민법 총칙·재정학·영어·국사 등 4과목을 필수로 실시하고 2차 시험에선 필수4, 선택2 과목이다. 헌법·행정학·행정법·경제학이 필수이고 국제법에서 통계학에 이르는 8과목 중 2과목이 선택.
▲외무 고등고시=1차에서 경제학·정치학·영어·국사 등 4과목만 필수로 실시하고 2차에선 필수5(헌법·국제법·외교사·영어·영어 외 외국어 1과목) 선택 l과목(국제정치학· 외국어 등 7과목 중)
▲기술 고등고시=기계·전기·농림·토목·건축·통신직에 따라 과목이 다른데 1차에는 헌법·영어·국사 공통이고 물리학 개론이나 생물학 개론(농림직 만)등 모두 4과목을 필수로 실시하고 2차에서도 4과목을 직종에 따라 필수 혹은 선택으로 실시.
우선 시험과목이 많다고 지적한 가재환 법원행정처 기획담당관은 사법시험에서 1차 필수과목 5개 중 헌법·형법·민법 등 3과목 만 실시, 2과목을 줄이고 2차 시험에서는 8과목 중 헌법·민법·형법·민사소송법·형사소송법 등 5과목과 행정법·상법 중 택일 등 6과목만 실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양준모 회장은 환경법·근로기준법·세법 등을 선택과목으로 넣을 것을 제의했고 문상익 부장은 국사를 2차 필수에서 1차 필수로 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는 견해이다.
고시위원인 박윤흔 씨 (법제처 법제관)는 행정고시 1, 2차 과목 10개 중 5개 과목이 경상과목이라고 지적, 그 중 일부를 법학과목으로 대체해야 하고 2차 시험의 선택과목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
외무고시에 관해 최호중 외무부 정무담당 차관보는 영어 이외에 외국어 2과목을 선택하는 2차 시험에서 외국어 한 과목을 외교관계과목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고, 이상옥 기획관리실장은 외국어에 일본어를 추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다.
차제에 고시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견해 중에는 김도창 씨(전 고시위원·현 유정회 의원)의 법대 전문화방안 등이 있다.
김 의원은 사법시험의 경우 판·검사와 변호사의 수요가 급증하는데 이에 충당하기 위해 합격점수를 낮추는 것만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영국· 미국· 독일·일본에서처럼 법학교육을 의료대학 식으로 개편해서 법대출신의 80% 이상을 국가시험에 합격시키는 방안을 강구할 때가 왔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사법시험이나 고시에 응시하는 학생이 대학교육을 등한히 하는 문제와 관련, 응시자격 부여를 3학년 수료자 이상으로 부활하자는 견해(가재환 씨)와 대학졸업자에게는 1차 시험을 면제하자는 의견(양준모 씨)도 나와있다.
지난 49년에 사법·행정 양과로 시작된 고시제도는 61년에 일차 수정이 가해져 1차 시험의 객관식 방식을 도입했고 63년에 현행제도로 바뀌었다.
현재의 각종 고시과목은 창설 당시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데 각종 현행과목은 63년에 정해진 것이다. 행정고시 1차에 영어가 필수로 들어간 것은 지난 64년부터이며 그후로는 변동이 없었다.
총무처 시험당국자는 사법시험은 원래 법학에 통달한 법관을 뽑는 것이므로 시험과목 조정이 별로 문제되지 않으나 행정 고등고시의 과목 조정이 특히 요청되고 있다고 말했다.
총무처는 우선 각 대학의 교과과정표를 수집하는 등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사법시험과 각종 고시과목을 금년말까지 조정해서 내년부터 실시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조정 폭은 좁을 것이라는 것이 당국자의 견해이다. <노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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