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중앙시평

박근혜의 평화 비전과 '외교안보 개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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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박근혜 대통령이 외교안보의 핵심 두 축인 국가정보원장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경질했다. 두 군 출신 수장의 경질로 외교안보팀의 전면적인 개편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 때문에 국가 개조 못지않게 외교안보의 개조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박 대통령의 브랜드 이미지는 스마트 파워다.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적절히 결합한 유연하고 절제된 이미지다. 그런데 이런 스마트 파워의 모습이 우리 외교안보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억지력 중시의 하드 파워적인 모습만이 두드러져 왔다.

 왜 그랬을까. 북한의 위협과 일본의 과거사 도발로 국민이 피부로 느끼게 된 안보 불안을 의식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박 대통령 특유의 원칙론에 군 출신 외교안보 수장들의 하드 파워적 접근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외정과 내정에서 원칙론을 앞세운 하드 파워적 접근의 부작용이 적지 않다. 내정에서는 소통 부재로 국민통합에 문제점들이 노정되고 있고, 외정에서는 소프트 파워 부재로 안보적 전략성은 물론 외교적 유연성에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도발은 더 심해지고 있고 일본은 북한 카드를 꺼내 우리의 뒤통수를 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한반도 정세가 냉전시대보다 더 불안하다. 물론 냉전시대에도 대결과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미·소 양대 초강대국의 강력한 억지력 덕분에 그런대로 한반도는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위기가 언제 어떤 형태로 튈지 모르는 매우 유동적인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의 한 지인 교수가 제프리 삭스의 저서 『세계를 움직이다: 케네디의 평화 추구』를 소개했다. 핵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케네디 대통령의 외교안보 전략을 참조해 보라는 것이다. 쿠바 핵위기에 봉착한 케네디 대통령. 그는 소련과의 ‘파워 게임’을 회피해 흐루쇼프 총리와 ‘공통의 이해’를 찾는 데 몰두했다. 이 결과 그는 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미·소 간에 ‘새로운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케네디의 평화를 향한 비전이다. 케네디는 평화란 결코 한 나라의 힘만으로는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래서 절대 상대방이 야기할 최악의 사태를 가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곧 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일 군사전문가들의 의견을 따랐더라면 쿠바 핵위기는 결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삭스는 강조하고 있다.

 케네디의 교훈은 분명해 보인다. 결코 상대방이 몰고 올 최악의 사태에 미리 매몰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적국이라 하더라도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이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찾아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외교안보 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평화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체제 전환과 새로운 국가 건설에 경제고문으로 참여한 삭스. 오늘의 러시아를 만든 ‘제조 책임자’로 비난받고 있는 그다. 하지만 그는 곤경에 처한 러시아를 외면한 미국과 서방의 책임이 더 크다고 주장한다. 곤경에 처한 나라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은 결과라는 것이다. 의미심장한 반론이다. 마치 제1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 독일에 대한 지나친 배상 강요를 우려한 케인스의 경고처럼 들린다. 케인스는 독일을 지나치게 몰아붙이면 후일 심각한 정치·군사 후유증을 발생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이다. 실제 그의 경고는 현실로 나타났다. 독일에 의한 2차 대전의 도발이었다.

 신냉전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 작금의 서방과 러시아. 미국이 사회주의 붕괴 후 곤경에 처한 소련을 궁지로 몰아넣은 정치 군사적 후유증에 다름 아니라고 삭스는 주장한다.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아 보인다. 지금 남북관계가 서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파워 게임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를 강조하며 북한에 대해 ‘전쟁 중이라도 대화는 필요하다’고 언급해 온 박 대통령. 지금 북한은 심각한 경제적 곤경에 처해 있다. 이런 북한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는 것은 보다 심각한 정치군사적 후유증을 몰고 올지 모른다. 그 때문에 5·24 조치의 단계적 해제를 통해 남북 간에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이해를 찾아내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암초에 부닥친 박 대통령의 평화 비전. 군 출신 두 안보 수장의 경질이 평화를 위한 박 대통령의 외교안보 개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내외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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