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현금 다발, 양주 2백여병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겼다'는 말이 딱맞는 게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니겠는가.

세무서장 시절 관내 호텔에 부정하게 법인세를 돌려준 혐의로 구속된 국세청 유모 간부의 자택수사 결과는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수사관들이 그의 집을 뒤지자 빳빳한 현금 다발과 상품권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한다.

방 한곳은 아예 술창고였다. 로열 살루트와 발렌타인 등 고급 양주 2백여병이 가득 차 웬만한 룸살롱을 뺨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수사관 앞에서 누구한테 받았는지 모른다느니, 관내 술장수에게 받았으나 대가성은 없었다고 둘러대기 바빴다니 너무 한심스럽다.

정부는 지난해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게 일류국가로의 도약과 국제경쟁력 강화에 절대적 조건이라며 부패방지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공무원 윤리규정을 만들고 대국민 청렴서약까지 하고 나섰다. 이 규정은 3만원 이상의 축.조의금 외에도 5만원 이상의 선물 수수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의 부패가 이처럼 만연해서야 아무리 그럴듯한 윤리강령을 만들더라도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권력기관의 부패야말로 암적 요소로 전 서울지방국세청장마저 자리를 옮기면서 축하 명목으로 돈을 받아 기소된 게 작금의 현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뇌물공화국' 오명은 좀체 씻기지 않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국가부패지수는 91개국 중 42위다. 그것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법도 상식도 부패 앞에서는 무력해질 따름이다. 출세나 사업을 하려면 줄을 잘 서거나 뇌물을 잘 써야 한다며 어느 정도의 부패는 당연시하는 게 우리 국민의식의 현주소다.

물론 이 한건으로 모든 공무원을 싸잡아 매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 부패구조가 공무원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증거다. 특히 세무공무원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을 다시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부패와의 전쟁은 영일이 없어야 한다. 권력기관의 부패에는 필벌의 무거운 매를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