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당국 허가도 받지 않은 불법 공사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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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경찰 과학수사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이 27일 오전 경기도 고양종합터미널 지하 1층에서 화재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이날 방화셔터와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 등에 대한 정밀감식이 이뤄졌다. [뉴스1]

지난 26일 불이 나 8명이 숨진 고양종합터미널이 소방당국의 허가 없이 불법으로 지하 1층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27일 경기도 고양시청과 일산소방서에 따르면 시공업체 A사는 지난달 22일 고양시청으로부터 고양종합터미널 지하 1층에 푸드코트를 만들기 위한 공사(대수선 공사) 허가를 받았다. 푸드코트를 운영할 CJ푸드빌의 요청에 따라 터미널 실소유주인 맥쿼리투자신탁운용이 발주한 공사였다.

 시공업체는 허가를 바탕으로 이달 8일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전에 소방당국 허가를 받지 않았다. 공사는 방화 셔터의 위치를 바꾸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소방 설비를 변경하는 공사는 소방설비업법에 따라 관할 소방서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시공업체 A사는 허가 없이 공사를 진행하다 2주일이 지난 22일에야 일산소방서에 허가 신청을 냈다. 일산소방서 측은 “시공업체가 밝히지 않아 이미 착공한 뒤에 신청 서류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일산소방서는 정상적인 사전 허가 요청으로 알고 서류를 검토했다. 26일 중 최종 허가 여부를 결론지을 예정이었으나 직전에 불이 났다. A사가 왜 사전에 소방당국 허가를 받지 않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고양시청은 “허가를 내주면서 소방당국의 착공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시공업체에 분명히 알렸다”고 밝혔다.

 터미널에서는 또 불이 났을 때 유독 가스를 밖으로 내보내는 제연설비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현행법상 불이 난 터미널 지하 1층처럼 외부로 난 창이 없는 실내 공간은 바닥 면적이 1000㎡ 이상일 경우 천장에 제연설비를 의무 설치해야 한다. 고양터미널 지하 1층은 바닥 면적이 2만㎡를 넘어 제연 설비를 갖추고 있다. 익명을 원한 소방당국 관계자는 “제연설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번 사고 때처럼 터미널 안에서 연기가 빨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터미널에서는 불이 나면 자동으로 내려와 불길과 연기를 차단해야 하는 방화 셔터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 사고를 조사 중인 검찰과 경찰·소방당국은 시공업체가 공사 편의를 위해 방화셔터와 제연설비 작동 장치를 꺼 놓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소방당국의 착공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소방설비가 작동하지 않도록 했다면 이는 ‘소방시설 설치 및 유지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사망 1명 늘어 8명으로=수사본부는 이날 지하 1층 작업 근로자와 건물 관리자 등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다. 또 검찰·경찰·소방·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으로 합동 감식반을 꾸며 화재 현장을 살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감식에서 찾아낸 증거를 바탕으로 화재 원인과 문제를 정확히 규명하려면 한 달 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8시30분쯤 중상자 1명이 더 숨지면서 전날까지 7명이었던 희생자는 8명으로 늘었다.

고양=전익진·윤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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