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시험에 고1 문제, 왜 이런 걸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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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9월부터 ‘선행학습 금지법’(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 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 실시된다. 학교에서는 해당 학년 교육과정을 넘어서는 내용을 가르쳐서도, 시험에 출제해서도 안된다는 얘기다. 학습 부담을 줄여주고 사교육을 예방하자는 취지다. 특히 수학이 타깃이다. 학부모와 학생 모두 그 동안 “학교 수학시험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한 학기, 제대로 하려면 1~2년 정도는 선행을 해야 한다”고 하소연 해왔기 때문이다.

법 시행을 코 앞에 둔 지금 정부 바람대로 일선 학교는 정말 변하고 있을까. 지난달 하순부터 이달 초까지 치러진 서울 지역 14개 중학교 2학년의 1학기 수학 중간고사 시험문제를 입수해 선행을 유발하는 문제가 있는지, 또 난이도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분석했다. 서울 강남구·양천구·노원구 등 소위 교육특구에 있는 학교는 여전히 시험문제를 과도하게 어렵게 내고 있었다. 선행 없이 못 푸는 문제는 없었지만, 일부 학교에선 선행을 하면 풀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문제를 내기도 했다. 수학시험이 시간 싸움이라는 걸 감안하면 분명 학부모가 선행을 선택하게끔 하는 요인이 되는 셈이다.

이런 문제 나오면 선행 유혹 떨치기 어려워

수학 시험문제 분석은 강남구 중학교 4곳(구룡중·대명중·대청중·중동중)과 양천구 3곳(목동중·목일중·양천중), 노원구 3곳(상계중·중계중·하계중), 그리고 도봉구 2곳(신도봉중·신방학중), 강북구 1곳(삼각산중) 등 ‘교육특구’와 그렇지 않은 곳으로 구분해서 했다. 대원국제중도 포함시켰다. 분석과 평가는 교육운동 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 수학사교육포럼 최수일 대표(전직 수학 교사)와 전국수학교사모임 소속 교사 12명이 참가했다.

전홍인 교육부 공교육진흥과 사무관은 “학년별로 배워야 하는 성취목표와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해 일선학교에 배포했다”며 “이를 넘어서는 내용을 수업 중에 가르치거나 시험문제에 출제했다면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분석에서는 중2 과정을 벗어난 개념을 문제에 활용한 것 뿐만 아니라 중2가 배우는 수학 개념으로 풀 수는 있지만 상위 학년 개념과 공식을 알면 더 쉽고 빠르게 풀 수 있는 문제까지 선행 유발 문제로 봤다.

평가 결과는 어땠을까. 분석 대상 14개 학교 중 8개 학교에서 선행 유발 문제를 출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천구 목일중이 4문제로 가장 많았고, 대원국제중(광진구)·목동중(양천구)이 3문제, 대청중(강남구)은 2문제가 있었다. 강남구 구룡중·중동중과 노원구 하계중, 도봉구 신도봉중은 각각 1문제씩이 선행학습을 한 학생에게 유리한 문제였다. 중3 과정인 이차방정식을 문제에 등장시켰거나, 고1 과정인 유리식의 계산과 비례식 공식을 알면 문제를 더 쉽게 풀 수 있는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중2 과정에선 연립일차방정식만을 다루지만 목일중·중동중 시험 문제에선 고1 과정 연립이차방정식 개념을 등장시켰고, 구룡중은 고1 수준의 지수법칙 문제를 출제했다. 목동중도 고1 과정인 미지수가 3개인 연립방정식 문제를 냈다. 대원국제중은 연립방정식의 해와 계수의 관계에서 고교 과정의 공식을 알면 더 쉽고 빠르게 풀 수 있는 문제를 냈다. 중2 과정 개념이라지만 상위 학년 공식을 알면 풀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선행학습을 한 학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학교 측은 대부분 이런 분석 결과에 동의하지 않았다.

김창호 대원국제중 교장은 “중2 개념으로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반박했다. 또 “상위 학년 개념과 공식을 모르고서는 풀 수 없는 문제라면 선행학습을 유발한다고 볼 수 있지만 다소 계산 과정이 복잡해도 중2에서 배운 개념을 활용해 풀 수 있다면 선행학습을 유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강남·양천 등 교육 특구, 시험 너무 어려워
대원국제·대명중, 문제 20%가 경시대회 수준

김서구 목동중 교장도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시키지도, 관련 문제를 출제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최승애 목일중 교장 역시 “우리 학교의 학력수준이 높아 몇 문제가 어려웠을 수는 있겠지만 상위 학년의 개념과 공식을 활용해야 하는 문제를 낸 적은 없다”고 했다.

사교육걱정 수학사교육포럼 최수일 대표는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학교나 교사별로 관점 차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분석에 참여한 대부분의 교사들은 “45분 안에 20~25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학시험에서 문제를 푸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점수에 큰 영향을 끼친다”며 “아무리 중2 개념으로 풀 수 있다고 해도 상위 학년 개념과 공식을 응용하면 훨씬 더 빠르게 풀 수 있는 문제는 분명 선행학습을 유발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별 난이도 천차만별

각 학교별 수학시험의 난이도도 측정했다. 난이도는 선행학습을 한 학생에게 유리한 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문제 가운데 극상·상·중·하 네 단계로 구분했다. ‘극상’은 여러 개념을 복합적으로 활용해야 하거나 계산과정이 복잡한 고난이도 문항이다. 수학경시대회 수준의 문제로, 학원에서 풀이법을 반복해 훈련받았다면 유리하다. ‘상’은 단순히 교과 개념을 묻는데 그치지 않고 한 차례 더 응용해 풀어야 하는 문제다.

분석 결과 강남·양천·노원구 학교가 강북·도봉구 학교보다 ‘극상’이나 ‘상’ 문제 비율이 더 높았다. 강남·양천·노원구의 ‘극상’과 ‘상’을 합한 문제 비율 평균은 각각 44.7%, 43.3%, 48.6%였다. 특히 학생 선발권을 가진 대원국제중은 이 비율이 59.1%나 됐다. 시험 문제 절반 가까이가 중2가 풀기에는 버거운 문제라는 얘기다. 경시대회 수준인 ‘극상’ 문제 비율이 20%를 넘는 학교는 대원국제중(5문제, 22.7%)과 대명중(6문제, 26.1%) 두 곳이었다.

반면 강북·도봉구 3개 학교는 ‘극상’ 문제가 단 하나도 없었다. ‘상’ 문제만 평균 21.13%였다. 다시 말해 대부분 난이도가 ‘중’‘하’라는 말로, 교과 개념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계산이 단순해 빠르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됐다. 그만큼 시험이 쉬웠다는 것이다. 분석에 참여한 홍창섭 서울 경희고 교사는 “강남·양천·노원구는 문제가 너무 어렵고, 강북·도봉구는 평이했다”며 “지역이나 학교에 따라 수학 시험 난이도가 큰 차이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같은 교육특구 안에서도 학교별 수준 차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강남구 대명·대청·중동중은 극상·상 문제 비율이 48~56.5%에 달했지만 구룡중은 극상·상 문제 비율이 21.7%(5개)에 그쳤다. 양천구 양천중, 노원구 하계중도 이와 비슷했다. 같은 구 내 다른 학교의 극상·상 문제 비율은 52.4~58.3%였지만 양천중·하계중은 각각 21.7%(5개), 27.3%(6개)에 그쳤다.

부천북중 류상주 교사는 “여전히 강남 등 일부 학교에선 문제를 과하게 어렵게 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창섭 교사는 “4~5년 전 강남권 학교의 시험 난이도를 평가한 적이 있다”며 “학교들이 여전히 상대평가 때와 비슷한 난이도의 문제를 출제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중학교는 절대평가다. 지필고사·수행평가 점수를 합쳐 90점 이상은 A, 80점 이상은 B를 주는 식이다. 과도한 성적경쟁을 지양하고 해당 학년의 성취 목표와 기준을 충족하면 성적을 주겠다며 도입했다. 학습 부담을 줄이고 사교육을 막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분석에 참여한 교사들은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꿨다고 해서 학습 부담이 줄지 않는다”며 “일선 학교의 시험 난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류상주 교사는 “선행유발 가능성이 있는 문제는 철저하게 출제를 금지하고, 극상 난이도 문제도 출제 비율에 제한을 두면 지금보다 난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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