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 빌 게이츠 … 기자의 벽을 허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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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가수 마돈나,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영화배우 알렉 볼드윈.

 세계적 유명인사(celebrity)인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허핑턴포스트에 글을 쓰는 ‘컨트리뷰터(contributor)’란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허핑턴포스트는 유명 뉴스 사이트나 블로거들의 칼럼, 논평 기사를 제공해 성공한 뉴스 사이트다. 정치, 비즈니스, 엔터테인먼트는 물론 결혼, 이혼, 부모, 코미디 등 50여 개의 섹션이 있다. 허핑턴포스트는 처음부터 내부 기자뿐 아니라 외부 글쟁이들의 글을 올렸다. 정치인, 대학교수, 연예인, 작가, 시민운동가 등을 망라했다. 기고자, 외부전문가 필진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컨트리뷰터들이 성공 동력이었다.

 최근 이 사이트에 게재된 ‘우파 이념이 어떻게 여성 건강을 해치는가’라는 글은 미국 클린턴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라이히 전 장관이 썼다. 그 역시 컨트리뷰터다. 설립 초기 약 500명이던 컨트리뷰터는 현재 7만여 명에 달한다. 700여 명인 기자 수의 100배 규모다. 지난 4월 허핑턴포스트의 순방문자(UV) 수는 8800만 명에 이른다.

 디지털 미디어의 확대와 함께 컨트리뷰터 제도가 언론의 새 흐름으로 정착하고 있다. 전문가와 독자들을 향한 ‘지면 개방’이다. 보수 성향의 TV채널인 폭스 뉴스에선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이 컨트리뷰터로 활동 중이다. CNN도 변호사, 컨설턴트 등 다양한 컨트리뷰터를 수시로 활용하고 있다.

 올해 초엔 세계 각국의 전·현직 지도자들, 노벨상 수상자, 혁신적 기업가들을 대거 컨트리뷰터로 선정한 ‘더월드포스트’가 출범했다. 미국 싱크탱크 베르 그루엔거버넌스연구소(BIG)와 허핑턴포스트가 50대50으로 합작했다. BIG의 설립자는 ‘집 없는 억만장자’로 알려진 자선사업가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이다.

 더월드포스트의 편집진과 컨트리뷰터엔 에릭 슈밋 구글 회장,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 거물들이 참여한다. 25일(현지시간) 이 사이트엔 자선사업가로 활약 중인 빌 게이츠의 ‘아프리카 원조의 시련과 승리’라는 글이 게재됐다. 지난 14일에는 전 영국 총리 고든 브라운의 글 ‘학교는 전쟁의 무기가 아니다-나이지리아든 어디든’도 올라왔다.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에 납치된 여학생 280명의 무사 귀환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컨트리뷰터제의 또 다른 성공 모델은 경제 매거진인 포브스다. 최고 제작 책임자인 루이스 드보르킨이 2010년 온라인(포브스닷컴)에 도입했다. ▶기업가 ▶자본주의 ▶혁신 ▶부 등 포브스의 가치에 맞는 주제를 다룰 컨트리뷰터를 엄선했다. 학자, 퇴직기자, 작가, 기업가 등 2500여 명이 활동한다. 편집진은 이들의 원고에 손대지 않는다.

 고료가 없는 허핑턴포스트와 달리 포브스는 원고료를 지급한다. 인센티브도 확실하다. 독자들이 처음 읽을 땐 소액의 원고료가 지급되지만, 계속 방문하면 원고료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드보르킨은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은 언제 어디서든 글을 발표할 수 있고, 독자가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다. 컨트리뷰터들은 충성도 높은 독자가 많을수록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고 말했다. 컨트리뷰터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신의 글을 열심히 홍보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10만 달러 이상을 버는 컨트리뷰터들도 생겨났다.

 포브스도 막대한 이점을 누린다. 가령 모터쇼를 보도하는 포브스 기자는 몇 명에 불과하지만 컨트리뷰터는 수십 명에 달한다. 기술에 특화한 컨트리뷰터는 100명 이상, 투자에 대해 글을 쓰는 컨트리뷰터는 200명 이상이다. 고품질 콘텐트를 적은 비용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포브스의 컨트리뷰터제는 대성공이었다. 2013년 포브스닷컴 접속 수는 5100만 건으로 미국 내 전통 미디어 사이트 중 최고로 올라섰다.

 컨트리뷰터제는 오픈 저널리즘의 또 다른 형태다. 컨트리뷰터는 콘텐트를 제공하고, 미디어는 이 콘텐트를 전달하는 플랫폼이 된다. 아리아나 허핑턴은 최근 영국 옵서버지와의 인터뷰에서 “허핑턴포스트는 저널리스트 기업의 결합체이자 플랫폼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쓴 글을) 배포하고, (자신들의 주장이) 사람들에게 들리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마이크 페를리스 포브스 CEO도 “컨트리뷰터들은 포브스라는 미디어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컨트리뷰터제에는 몇 가지 취약점이 있다. 허핑턴포스트처럼 블로거들에게 대가를 지급하지 않아 항의와 비난을 받기도 한다.

 무엇보다 ‘책임’의 문제가 있다. 전통 미디어의 편집회의와 데스킹처럼 오류를 걸러주는 과정이 따로 없다. 컨트리뷰터가 글을 통해 개인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제동을 거는 시스템도 작동하기 어렵다. 컨트리뷰터 각자가 기사의 정확성을 담보하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컨트리뷰터 제도가 맞닥뜨린 숙제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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