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 포용적 주체성, 이승휴 선생 배워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이원종 이사장은 정무수석을 맡아 김영삼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대통령께 직언을 잘 하려면 비서의 입장에서 설득하려 하지 말고 ‘대통령의 언어’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세계화 시대에 우리 정체성을 지키면서 바깥 문물을 받아들이려면 포용적 주체성이 필요합니다. 지금 여기의 우리가 ‘동안(動安) 이승휴 선생’을 기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원종(75) 사단법인 동안이승휴사상선양회 이사장(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23일 본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13세기 고려말 문신인 이승휴는 『제왕운기』의 저자다. 삼척에서 태어나 삼척에서 세상을 떠난 삼척사람이다. 역시 삼척 출신인 이 이사장은 2009년부터 이승휴사상선양회를 이끌고 있다.

 - 왜 지금 ‘이승휴’인가.

 “2차 세계대전 후 탄생한 수많은 신생독립국가 중 대한민국만이 유일하게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었다. 우리가 세계 앞에 당당히 서게 된 것은 새롭고 발전한 과학 기술과 선진 문화를 과감하게 수용해 우리의 문화와 가치에 맞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는 상당부분 이승휴 선생의 탁월한 저술과 그 가르침 덕분이다.”

 - 어떤 가르침인가.

 “선생은 이민족의 침략에 의한 외세의 정치적 간섭과 무단정치 말기 내정의 극심한 혼란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아야 했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민족적 시련의 시기였다. 선생의 역사관은 이런 현실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식에서 출발했다. 원나라의 간섭 하에 있는 고려사회에 민족의 자주성과 독자성을 고양하기 위해 『제왕운기』를 쓰신 거다.”

 - 『제왕운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우리나라 역사를 중국 역사와 대등한 입장에서 서술했다. 또 우리 민족의 시조로 단군을 내세워 우리나라를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나라로 서술했다. 단군조선- 기자조선- 삼한- 삼국- 통일신라·발해- 고려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단군조선의 개국 연대를 중국과 동일하게 기원전 2333년으로 잡은 것도 그였다. 지금 쓰고 있는 단기(檀紀)가 이를 기준으로 탄생한 것이다.”

 - 올해 이승휴 문화상을 제정했는데.

 “이승휴 선생의 얼과 사상을 기리고 배움으로써 오늘을 사는 우리의 규범으로 삼기 위해 매년 문학·학술·예술·사회봉사 4개 분야에서 탁월한 활동을 한 분들을 선정할 계획이다.(7월 말까지 각계의 추천을 받아 9월 중순에 수상자을 발표한다. 각 분야별 상금은 3000만원이다.)”

 이 이사장은 1965년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사업을 하다 72년 신민당에 입당했다. “10월 유신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 후 김영삼 민주당 총재 공보비서관 등을 지냈다. 김영삼 정부 시절 공보처 차관을 거쳐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3년4개월을 일했다. 기자들과 격의 없이 열정적으로 토론을 벌이곤 해서 ‘핏대’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는 세월호 이후의 정국에 대해서 쓴소리를 했다. “세월호 이후 국가적 위기는 정치권의 책임이다. 정당과 정치권이 국민을 통합해야 하는데 국민을 정치의 주체나 최종소비자로 여기지 않고 그저 표 주는 사람으로만 인식하는 듯하다. 정치권이 권력만 생각했지, 책임성이 없다. 책임 없는 권력은 폭력일 뿐이다.”

 청와대 수석 시절 ‘그림자 참모’로 불렸던 이 이사장은 대통령, 청와대, 내각의 관계 설정과 관련해선 이런 말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청와대 비서실만 보이고 내각이 안 보이더니, 요즘엔 청와대 비서실도 내각도 안 보이고 대통령만 보입니다. 대통령이 힘들겠어요.”

글=서경호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