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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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홍콩」의 전체 인구 4백50만명중 98·2%가 중국인이고 나머지 l·7%(7만여명)의 외국인 가운데 교포는 4백37가구에 1천4백38명 (78년 2월말 현재)에 불과하다.
한국교포는 영국·인도·미국·호주·일본·「포르투갈」·「파키스탄」에 이어 숫적으로 8위를 차지, 독자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다.
세계 제2차대전 직후만해도 사람이라곤 불과 5∼6명 손꼽을수 있었고 「마카오」무역을 한답시고 「홍콩」을 내왕한 사람은 많게 봐야 고작 30명 안팎이었다.
그러나 30년이 넘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일반교민은 1천36명을 헤아리게 됐고 총영사관·외환은행·「코리아·센터」 「코트라」·대한항공·한성 「샐배거」·고려원·종합상사·일반회사지점·단체취업자등등 한인식구가 대폭적으로 늘어 버글거리고 있다.
등기된 무역회사만해도 현지법인 36개, 서울본사의 지점및 지사가 49개등 모두 85개에 이른다.
주 「홍콩」 한국총영사관은 아직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을 포함하면 모두 90여개에 이를것이라고 추산했다. 「홍콩」사람이 「코리아」를 알게 된것은 종전후인 48년도쯤이라하면 아마 맞을거야. 그것드 족구(축구)시합으로 알게 됐지. 그러나 월남「붐」이 일면서 차차 더 알게 됐고 대「홍콩」교역이 활발해지면서 더 잘알게 된거야.
지난 3윌1일 교민회총회에서 회장으로 재선된 홍정완옹 (70)은 한국과 「홍콩」은 비행기로 3시간반 거리라는 이유도 있어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가까우면 가깝지 멀어지지 않을것이라고 했다.
「택시」 운전사치고 한국의 강징 「혼곡다이한」 (한국대하코리아·센터)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웬만한 「호텔」 종업원들은 「여보세요」 「감사합니다」 「기다리세요」등등 기초적인 한국어회화는 예사로 지껄인다. 「홍콩」의 교민사회에는 원로교포 10가구가량이 있다.
이른바 「샹하이」 (상해) 귀환동포라 불리는 이들은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이 생활기반을 닦고 여생을 보내고 있다.
「벤츠」를 굴리거나 거금을 예금한채 삶을 보내는 것이 아니고 「아파트」 한두채쯤 소유해서 집세로 그럭저럭 지내는 것이다.
「홍콩」은 워낙 집값이 비싸서 「아파트」 한두개 정도 갖고 있으면 남부럽지 않게 살수 있는 곳.
그러나 아직도 경제적 기반을 잡지 못한 불우한 사람도 없지 않다. 상해 귀환동포 최현부씨(57)가 그대표적인 「케이스」.
그는 생계를 잇기에 허우적거리다 요행을 바라고 녹용밀수로 일확천금의 꿈을 그리다 그만 지명수배의 몸이 되었다.
대모국밀수에서 한번도 재미를 못본 최씨는 마지막 승기를 잡으려다 끝내 재기불능의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작년에 국내에서 화제를 모았던 외교관 이용 녹용밀수의 주범 최씨는 아들을 귀국시키면서 3 「트렁크」분의 값진 녹용을 국내 밀반입을 기도했다가 들통이 났다.
「홍콩」교포사회에는 뚜렷하게 까놓고 경계는 안하지만 은근히 상대를 경계하고 멀리하는 대인감각이 어느새 전통처럼 되어있다.
자기집에 불러 가족끼리 오순도순 식사를 함께 하는 한국적 풍속은 이곳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애써 기피하려는 경향이 짙은게 향항의 한인사회 특징이다.
혹시나 자기의 사생활을 알리게 되거나 경제적 여건을 노출시킬까봐서다.
심지어는 관계당국에 투서를 하거나. 진정서 작전을 펴 철저하게 욕보이는 예가 없지 않았던게 오늘의 한인 사회다.
경제적 이해관계로 얽히고 설켜 있는 「홍콩」이어서 성공을 위해선 가능하면 경쟁자가 성공하지 않도록 빌고 자신은 자신의 약점이 노출되지 않도록 몸조심·말조심…. 신경질적으로 갖가지조심에 예민한 것이 「홍콩」의 한인사희다. 【홍콩=이경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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