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계 통신 『정보』지배에 화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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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3일부터 12일까지 호주에서 열흘간 계속된 IPI(국제신문인협회) 제27차 연례총회의 주제는 『언론의 새 방향』. 34개국에서 2백25명의 대표가 참석했다.
이 모임은 실질 회의라기보다는 각국 언론인들의 교환과 친목에 더 중점이 있는 것 같았다.
총회기간이 열흘이라고 해도 하이라이트는 7일부터 9일까지의 사흘뿐. 그 나머지는 사교와 관광행사로 채워졌다.
총회에서는 각 지역의 도전 받는 언론의 현황에 대한 보고에 이어 3개 주제에 대한 세미나가 있었다.
언론자유가 침식되고 있는 나라나 지역으로 보고된 곳은 남아연방·포르투갈·태국·스페인·말타와 중남미 및 블랙아프리카 제국 등.
그러나 총회에 보고되었다고 해서 언론상황이 꼭 극악하다거나, 보고되지 않았다고 해서 언론상황이 좀 낫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오히려 언론자유가 극도로 침해되고있는 경우에는 그 현황이 보고될 수조차 없을는지 모른다. 대개의 경우 보고자들이 자기나라나 자기지역의 언론현황을 보고해야하기 때문이다.
숀·맥브라이드(유네스코 통신문제 국제위 의장·노벨평화상 수상자)의 기조연설과 세미나 토의과정에서 부각된 주요쟁점은 『자유롭고』 『균형있는』 정보의 교류에 대한 시각의 차이였다.
회의가 회의이니만큼 자유로운 정보의 교류(Free flow of information)가 이뤄져야한다는 데는 어느 누구도 이의가 없었다. 다만 보다 균형된 정보의 교류(More balanced flow of information)라는 점이 문제였다.
현재 세계에는 약 1백10개의 통신사가 있다. 그러나 이중 약3분의2는 통신을 광범히 제공할 수 있는 기본시설마저 미흡하다. 자연히 5개의 대통신사가 그들의 뉴스와 해석을 전세계에 주입시키게 되어있다.
그나마 대통신사마저 특파원의 62%를 북미와 유럽에 집중 배치하고 아시아와 대양주에 17%. 중남미에 11%, 중동에 6%, 아프리카에 4%를 두고있을 뿐이다.
그러니 뉴스의 양이나 뉴스를 보는 시각이 모두 구미 중심일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황을 개선해야한다는 명분에서 유네스코가 앞장서 제기하는 『보다 균형된 정보의 교류』란 명제가 구미 언론인들에게는 『자유로운 정보의 교류』를 저해하려는 음모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영국 선데이·타임스의 로즈마리·라이터 같은 사람은 균형의 지나친 강조는 『늑대 탈을 쓴 양』이라고까지 말했다.
자유교류 제일주의론은 여건이 성숙해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균형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는 개발도상국들의 권위주의적 통치자들에 의해 정보의 자유로운 교류를 침식하는데 이용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대해선 약간의 반론도 없지는 않았으나 구미 언론인들의 주도 속에 별 관심을 끌지 못한 채 매몰되고 말았다.
그밖에 특히 『조작의 자유』란 제목이 붙은 아시아 언론에 관한 세미나가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홍콩의 초드리, 필리핀의 로페스, 인니의 루비스, 스리랑카의 위크레메싱헤가 발표자로 나섰는데 이중 초드리의 발표는 아시아 언론 전반을 다룬 것이었다.
그는 일본과 최근의 인도를 제외한 모든 아시아의 언론이 집권자의 눈치를 살피는 상황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대개의 언론인들이 부자유를 느끼기보다는 사고나 이해를 정부에 일치시켜 상호의존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선 한국에 대한 독립적인 논의는 없었고, 초드리 등 한 두 발언자에 의해 아시아 언론의 일환으로 몇번 이름이 오르내린 정도였다.
총회에서는 남아연방·인도네시아·중남미제국의 언론인탄압에 대한 규탄결의와 유네스코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결의도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의안이나 기타 선거는 모두 몇몇 IPI 터줏대감들에 의해 막후에서 조정된다. 총회는 대개 사교에 바쁜 대표들의 무관심 속에 상정된 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해버리고 말 뿐이다.
발족 27년이 된 IPI. 이제 실질문제를 다루는 권위 있는 기구로 체질을 바꾸는 문제를 심각히 검토해야 할 단계가 아닌가 싶다. [성병욱(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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