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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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공자가 흉악한 도적 도 척을 설득하러 갔다. 그러자 도 척은 공자에게『나무 가지 같은 관을 쓰고 사우의 피 대를 메고 스스로 경작치 않으면서 먹고 스스로 짜지 않고 옷을 입고… 너야말로 천하의 대죄인』이라고 면박했다.
노동은 하지도 않고, 입으로만 한몫보려는 것만큼 나쁜 것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장자」의 도 척 편에 들어 있는 얘기다. 물론 장자의 제자가 공자에 대한 비판을 의해 꾸며낸 얘기다.
그러나 비슷한 얘기가 공자자신의 말이라는「논어」에도 나온다.
나그네길에 함께 나섰다가 자기만 공자 일행과 떨어진 자로가 길가의 늙은 농부에게 스승 공자를 못 봤느냐고 물었다. 농부는 대답하기를『사지를 움직이지도 않고 오곡을 구별할 줄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스승이 된단 말이요』
오늘은 근로자의 날. 한국의 모든 임금노동자와 월급쟁이들이 1년에 꼭 한번 맘놓고 큰소리 칠 수 있는 날이다.
언제부터 노동자를 근로자라 부르게 됐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 식모가 가정부가 되고, 차장이 안내양으로, 운전 수가 기사로 바뀐 것과 거의 때를 같이 했을 것이다.
호칭이 바뀌면 그만큼 대접도 달라져야 옳다. 확실히 눈 가리고 아옹하자고 근로자라 바꿔 부르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조금도 바뀌지 않은 게 있다. 봉급이란 말이다. 봉급의「급」은「계」와「합」이 합쳐진 글자다.
베틀을 돌릴 때 실이 곧잘 끊긴다. 그런 때 끊긴 실을 이어 놓는 것을 급이라고 한다.
이래서 물이나 기름이 떨어질 만할 때, 때를 놓치지 않고 알맞게 보충해 주는 것을 보급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적어도 일상의 살림에 지장이 없도록 알맞게 가계에 기름칠 쳐주는 것이 급이다. 말하자면 일을 잘 하도록 하기 위해 주는 급이다. 그러니까 고마워 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봉」자는 물건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쳐들고 있는 모습에서 나온 글자다.
이렇게 보면 봉급이란 노동자 때의 얘기지 근로자 때에 받을 것은 못된다. 차라리「월급」이나「급료」란 말이 어울린다.
하기야 알맹이라도 두툼하다면 얼마든지 급을 봉하겠다는 게 근로자들의 한결같은 심정이다. 그러나 기름을 너무 많이 바르면 오히려 기계에 탈이 난다. 그래서인지 봉급도 언제나 간신히 한 달을 넘길 수 있을 만큼밖엔 되지 않는다. 오늘은 근로자의 날, 은행원도 놀고 증권시장도 쉰다. 고궁도 입장이 무료요, 극장도 할인. 그러나 오늘도 쉬지 못하는 밑바닥 일손들도 많다. 그들은 근로자 자리에도 끼지 못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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