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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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구정을 전후하여 크게 치솟고있는 쌀값을 행정지도 가격으로 묶어 보겠다는 고충은 이해할 수 있어도 그 실효성에 대해선 의문이 많다.
물가를 행정력으로 규제한다는 것은 우선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이중가격· 품질 등 부작용을 일으킬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이미 쌀값은 한 가마에 3만원 선에 달했는데 이제 행정지도가를 2만7천5백원으로 낮춰 잡는다고 해서 과연 쌀값이 내려가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행정지도로 물가가 안정될 수 없다는 것은 쇠고기값 등에서 충분히 실증되었다.
더우기나 행정지도가인 2만7천5백원은 2월의 추곡수매가 2만6천7백80원보다 불과 7백20원밖에 높지 않은 점에서 행정지도가가 과연 현실적 수준이냐 하는 의문점도 있다.
정부가 쌀값에 대해 행정력을 발동키로 한 것은 1월중 물가가 2.9%나 올랐는데다 이것이 곡물 등 농수산물에 의해 주도되었다는데 자극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쌀값 안정이라는 응급요구 때문에 정부미 방출가를 현실화하여 양특적자를 줄이고 물가의 시장조절 기능을 살리겠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정책천명이 변질된 것이다. 그러면 쌀값 지지정책이 다시 억제책으로 바뀌게된 근본적인 요인은 무엇인가.
이 문제는 바로 작년에 사상최고의 대풍을 이룩, 쌀이 남아 골치라면서도 쌀값이 올라 가격동결을 안할 수 없는 불가사의와 상통된다.
정부당국이 매점매석 단속에 주력하는 것을 보면 쌀값급등의 원인을 수급면보다 오히려 유통과정의 조작과 농민들의 출하기피로 보는 것 같다.
만약 쌀수급면에서 문제가 없다면 정부미방출 증가·매점단속 등을 통해 가격안정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금년초 추곡수매의 부진 등에 비추어 과연 쌀이 많이 남아도는 지부터가 의문이다. 장기적으로 보아 값이 오른다는 것은 물량부족에 기인되는 것이며, 매점매석에 의한 가격 조절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쌀이 남아돈다는 것이 정확한 현실을 반영한 것인지 쌀의 생산· 소비 통계를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특히 농산물 통계는 과대평가 되기 쉽다는 점을 감안해야할 것이다. 쌀이 전체로 보아선 남지만 소비자가 실제로 요구하는 쌀은 부족할 수가 있다.
소비자가 많이 찾는 일반미의 수급에 차질이 나면 쌀이 아무리 풍년이 돼도 쌀값파동은 늘어날 수 있으므로 쌀의 양질화를 도모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값싼 정부미는 누구나 사먹기 쉽도록 하여 서민의 생계보호와 일반미에 대한 수요를 줄이되 일반미는 시장기능을 통한 안정을 기하는 것이 소망스러울 것이다.
행정규제에 의한 일반미 값의 안정은 행정력의 낭비와 부작용만 초래하기 쉽다. 우선 비현실적인 가격으로 일반미 출회를 감소시키거나 거래가 음성화될 우려가 많다. 쌀값이 억지로 억제되었다가 한꺼번에 크게 오를 가능성도 있다.
쌀값동결은 통계상의 물가안정 외엔 별 뜻이 없는 것이다. 쌀값억제를 위해 양특적자의 확대를 방치한다면 결과적으로 「인플레」요인을 조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근본적인 문제로 통화팽창·공산품가격 인상 등에 의한 연초의 물가충격을 저곡가로 완화하려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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