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충분한가‥도의교육|더 중요한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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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교단에 5명의 학생이 나와 간단한 연극을 하고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조헌으로 분장한 학생이 상감에게 열심히 상소를 하고있다. 조정의 간신배들을 물리치고 정치를 바로잡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나 그 옆의 신하는 오히려 조헌을 미친 사람이라고 간한다. 상감이 끝내 조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자 조헌은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다. 그리고 동지들을 모아 제자들을 가르칠 것을 의논한다.

<잡일에 시간 뺏겨>
연극이 진행되는 시간은 5분 남짓. 서울 덕성여중 도의시간에 오광섭 선생(38)의 연출 솜씨였다.
2학년 4단원 ⑤조헌과 금산 7백의 총을 공부하는 도의시간이 시작되면서 「5분 드라머」를 도입한 것이다.
오 교사의 말을 들어보자. 『막연히 예절은 이런 것이다, 친절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는 식으로 백 번 떠들어도 애들은 실감 있게 받아들이지 않아요. 상식적인 이야기라는 거지요. 말로 설명하기 앞서 같은 내용을 간단한 연극으로 처리해 학습 효과를 높여보려고 고안해본 방법입니다만…』 시간마다 이를 도입하자니 대본 만들기도 쉽지 않고 또 가르치는 일 이외에 학교에서 할일(잡무)이 많아 여러 번 시도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도의교사들이 자주 부닥치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하는 학습방법의 문제는 교과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 같다.
중·고둥학교에서 도의와 반공 두 책으로 나뉘어진 「도덕」과목의 한 주일 1시간 수업은 보통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로만 덮여진다.
학생들과의 대화가 모자라는 도덕과 에서 해야할 인간교육이 안 되는 것은 물론 교과서에 담긴 참뜻을 전달하는데도 빠듯하다고 한다. 그래서 도의시간은 단순한 지식전달의 시간으로 메워지고있다.
오산고 조무남 선생은 생활지도를 맡고있어 그래도 학생들과의 대화가 많은 편이다.
이 학교에서 우수한 학생으로 손꼽히는 K군(19)이 3학년2학기가 시작될 무렵 무단결석을 하면서 집에까지 잘 들어가지 않은 적이 있었다.
술과 담배까지 입에 대며 담임에게는 자퇴원서를 냈었다. 조 교사는 한달 동안 거의 매일같이 K군을 만났다.

<학습방법이 중요>
집으로 찾아가기도 하구 빵집에서 만나기도 하며 일요일 같은 때는 같이 등산을 가기도 했다. 1,2등을 다투는 K군의 주장은 대학진학을 그만두고 자립하겠다는 것이었다.
조 교사는 한참만에 이 학생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불만의 요소」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카운슬링」의 효과는 한 두 번만의 대화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꾸준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D중·고교 C교장은 지난 연초 가족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장성한 자녀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대화」가 너무 없다』는 항의였다.
『사실 학교나 사회·가정에서도 사무적인 것 이외에 대화가 너무 적어요. 솔직한 대화를 나누다보면 서로가 배우는 것이 많아요.』 C교장의 얘기다.
그래서 이 학교는 매주 1시간의 「홈룸」 시간을 「발표의 시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정한 과제를 내주고 이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발표하거나 보고서 형식으로 내도록 하고있다. 학생들의 바른 생활을 이끌어 가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수금원노릇이 웬 말>
「도의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고 흔히들 말하는 데 대해 일선교사들은 대략 수업시간 부족과 학습방법이외에 교사들의 자세에 관한 문제를 지적한다.
고등학교에서 도의시간이란 인문계는 대학입시에, 기술계는 기능사 자격시험에 얽매어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많은 학교에서 1학년 때 교과서 두 권(반공2단위·도의4단위·l단위=1학기 수업량)을 모두 끝내고 2,3학년에서는 아예 다루지 않고 있다가 예비고사에 임박해서 출제될만한 대목만을 골라 몇 시간 중점적으로 다루는가 하면 2단위 정도만 추려서 수업하는 경우도 있다.
그뿐인가. 담임 선생들은 항상 공납금 독촉에 쫓기고있다.「대화」고 교육이고 제대로 할 여유가 없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옛말까지는 안가도 좋습니다. 교사가 최소한 학생들로부터라도 존경을 받을 수 있게 교사 스스로와 사회전체가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C여중의 O교사의 표정은 절실했다. 학생과 학부모를 함께 만날 때, 학부모의 태도에서 불쾌한 적이 많았다는 게 이교사의 말이다.

<자기회복 앞서야>
『교사들 스스로가 자기비하를 하게되고 사회에서도 교사의 귄위를 인정해 주지 않는 교육풍토에서 교사들이 교육자라는 자부심을 찾기 힘들어요. 교사의 자기회복이 앞서기 전에 도의교육을 말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학교 안에서는 국어나 영어·수학 선생은 대우를 받고 도의선생은「천대」(?)를 받는다.
『그러나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교사 스스로가 권위를 찾아야 합니다. 제 경우는 언제 어디서나 「도의선생」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요. 사회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도록 행동해야한다고 많은 교사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고 낙관하는 교장도 있다. <이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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